"난 별 스토리 없는 영화가 좋다"
입력 : 2009.06.16 03:41 | 수정 : 2009.06.16 07:32
'걸어도 걸어도' 만든 일(日) 젊은 거장 고레에다 감독
"이야기 복잡해질수록 관객들, 놓치는 것 많아 차분함이 내 영화의 힘"
'아무도 모른다(2004)'와 '원더풀 라이프(1999)'를 만든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47) 감독의 신작 '걸어도 걸어도'가 18일 국내 개봉한다. 삶과 죽음, 인간의 상실과 기억에 대해 관조적 앵글을 유지해 온 그의 새 영화 역시 한 평범한 가족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최근 영화 홍보차 내한한 고레에다 감독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와세다대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나 활자 대신 영상을 택한 이 중년 사내는 언뜻 푸근하고 털털한 인상을 지녔다. 그러나 수염과 손톱을 공들여 다듬은 품이 그의 꼼꼼한 성격을 대변하는 듯했다.
최근 영화 홍보차 내한한 고레에다 감독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와세다대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나 활자 대신 영상을 택한 이 중년 사내는 언뜻 푸근하고 털털한 인상을 지녔다. 그러나 수염과 손톱을 공들여 다듬은 품이 그의 꼼꼼한 성격을 대변하는 듯했다.
―'걸어도 걸어도(步いても 步いても·아루이테모 아루이테모)'는 일본 노래 '부루라이토 요코하마' 가사에서 따왔다면서요.
"1970년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노래의 후렴인데 그 울림이 좋았어요. 그 노래를 들으면 어머니가 떠올라요. 어머니가 늘 흥얼거리던 모습과 당시 우리 집 풍경이 생각납니다. 2006년 가을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걸어도 걸어도'란 제목을 정했어요. 영화를 제목부터 정한 셈이죠."
―영화에도 어머니 생전 모습이 많이 담겼다던데요.
"어머니가 2년간 병원에 계셨는데 그때 누나와 함께 간병일기를 썼어요. B5 크기 노트 7권이 되더군요. 시나리오 쓸 때 그 일기에서 도움을 받았죠. 영화 속 어머니의 대사도 그렇고 등장하는 음식도 어머니가 실제로 해주셨던 겁니다."
영화 속엔 옥수수 알갱이를 밀가루 반죽에 묻혀 튀긴 '옥수수 튀김'이 나온다. 튀김 먹는 소리를 따로 녹음했는데, 영화 상영 중 배가 고파질 지경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지금은 일본에서도 먹기 힘든 음식"이라며 "교토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속 아버지가 빨래를 반듯하게 널었다가 홱 구기고 들어가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가장(家長)이 빨래를 그렇게 정성껏 널 수는 없다'는 일본 아버지들의 모습인가요.
"(웃으며) 그렇습니다. 수퍼마켓 심부름이 힘들거나 귀찮아서가 아니라 장바구니 든 모습을 남들에게 들킬 수 없어서인 것과 마찬가지이죠. 아버지뿐 아니라 의사나 교사, 정치가들은 자부심과 완고함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은퇴한 의사다. 앞집 할머니는 평소 "내 마지막은 선생님이 꼭 봐 달라"고 부탁하지만, 정작 그녀가 쓰러졌을 때 아버지는 "빨리 구급차를 부르라"고만 말한다.
―아버지의 무기력한 모습을 일부러 연출하셨겠지요.
"그렇죠. 그 모습을 아들이 목격하게끔 의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고집 세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애처롭고 가엾게 느껴지는 장면이지요."
―그런 연출은 매우 여성적입니다. '여자 같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습니까.
"저는 어머니, 누나 둘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잘 안 계셨죠. 여자들 사이에 있는 것이 항상 맘 편합니다. 그렇지만 정리정돈을 잘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한 번은 영화제에 갔을 때 누군가 제 호텔방에 갔다가 '도둑이 들었다'고 전화를 해왔어요. 제 방이 워낙 어질러져 있어서 도둑 든 걸로 착각한 거죠.(웃음)"
―카메라 움직임이 없거나 무척 느리고, 장면 길이도 긴 편입니다.
"이번 영화엔 한 쇼트에 4분짜리도 있습니다. 저에게 카메라는 관찰하는 도구이며 어떤 대상을 경청하고 응시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볼거리를 주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면 영화가 지루해질 텐데요.
"그래서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의 소리를 많이 넣습니다. 그러면 안정된 화면에 다양함이 생기고 권태도 극복되죠."
―이번 영화에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재미있지 않습니까?(웃음) 큰 사건이 일어나고 갈등과 수수께끼가 숨어 있으면 관객들이 이야기 따라가기 바빠서 못 보는 게 많습니다. 반면에 별 스토리가 없으면 차분히 캐릭터들의 디테일과 감정을 따라가면서 발견할 수 있죠. 음악도 멜로디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울림이라든가 심지어 침묵조차 음악 완성에 필요하죠. 자극적이고 큰 영화를 좇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도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고레에다 감독 영화의 힘인가요.
"그렇다고 자부합니다."
"1970년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노래의 후렴인데 그 울림이 좋았어요. 그 노래를 들으면 어머니가 떠올라요. 어머니가 늘 흥얼거리던 모습과 당시 우리 집 풍경이 생각납니다. 2006년 가을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걸어도 걸어도'란 제목을 정했어요. 영화를 제목부터 정한 셈이죠."
―영화에도 어머니 생전 모습이 많이 담겼다던데요.
"어머니가 2년간 병원에 계셨는데 그때 누나와 함께 간병일기를 썼어요. B5 크기 노트 7권이 되더군요. 시나리오 쓸 때 그 일기에서 도움을 받았죠. 영화 속 어머니의 대사도 그렇고 등장하는 음식도 어머니가 실제로 해주셨던 겁니다."
영화 속엔 옥수수 알갱이를 밀가루 반죽에 묻혀 튀긴 '옥수수 튀김'이 나온다. 튀김 먹는 소리를 따로 녹음했는데, 영화 상영 중 배가 고파질 지경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지금은 일본에서도 먹기 힘든 음식"이라며 "교토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속 아버지가 빨래를 반듯하게 널었다가 홱 구기고 들어가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가장(家長)이 빨래를 그렇게 정성껏 널 수는 없다'는 일본 아버지들의 모습인가요.
"(웃으며) 그렇습니다. 수퍼마켓 심부름이 힘들거나 귀찮아서가 아니라 장바구니 든 모습을 남들에게 들킬 수 없어서인 것과 마찬가지이죠. 아버지뿐 아니라 의사나 교사, 정치가들은 자부심과 완고함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은퇴한 의사다. 앞집 할머니는 평소 "내 마지막은 선생님이 꼭 봐 달라"고 부탁하지만, 정작 그녀가 쓰러졌을 때 아버지는 "빨리 구급차를 부르라"고만 말한다.
―아버지의 무기력한 모습을 일부러 연출하셨겠지요.
"그렇죠. 그 모습을 아들이 목격하게끔 의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고집 세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애처롭고 가엾게 느껴지는 장면이지요."
―그런 연출은 매우 여성적입니다. '여자 같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습니까.
"저는 어머니, 누나 둘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잘 안 계셨죠. 여자들 사이에 있는 것이 항상 맘 편합니다. 그렇지만 정리정돈을 잘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한 번은 영화제에 갔을 때 누군가 제 호텔방에 갔다가 '도둑이 들었다'고 전화를 해왔어요. 제 방이 워낙 어질러져 있어서 도둑 든 걸로 착각한 거죠.(웃음)"
―카메라 움직임이 없거나 무척 느리고, 장면 길이도 긴 편입니다.
"이번 영화엔 한 쇼트에 4분짜리도 있습니다. 저에게 카메라는 관찰하는 도구이며 어떤 대상을 경청하고 응시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볼거리를 주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면 영화가 지루해질 텐데요.
"그래서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의 소리를 많이 넣습니다. 그러면 안정된 화면에 다양함이 생기고 권태도 극복되죠."
―이번 영화에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재미있지 않습니까?(웃음) 큰 사건이 일어나고 갈등과 수수께끼가 숨어 있으면 관객들이 이야기 따라가기 바빠서 못 보는 게 많습니다. 반면에 별 스토리가 없으면 차분히 캐릭터들의 디테일과 감정을 따라가면서 발견할 수 있죠. 음악도 멜로디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울림이라든가 심지어 침묵조차 음악 완성에 필요하죠. 자극적이고 큰 영화를 좇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도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고레에다 감독 영화의 힘인가요.
"그렇다고 자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