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고래 심줄

〈제9보〉(133~143)=바둑을 '○○과 ○○의 대결'로 정의(定義)할 경우 원 안에 넣을 수 있는 낱말은 무수히 많다. 흑과 백, 집과 집, 집과 세력, 펀치와 맷집, 전투와 계산…. 하지만 바둑의 본질에 비쳐볼 때 '공격과 타개'만큼 어울리는 것도 없지 않을까. 한 판 바둑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쪽의 도전과 상대방 응전의 반복이며, 그 과정이 바로 공격과 타개다.

일방적 공격을 퍼붓는 쪽이 이겨야 옳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절벽을 등진 채 싸우는 검객이 반대편 편한 입지(立地)의 공격자를 베는 경우가 바둑에선 비일비재하다. 133이 놓이자 이젠 중앙도 중앙이지만 좌하쪽 백진마저 허술해졌다. 엎친 데 덮치기까지 한 격. 여기서 참고도 1, 3은 4를 당한 뒤 A와 B를 맞봐 파탄이다. 백은 134로 또다시 버틴다.

백의 강인한 저항에 흑도 기세가 수그러든 듯 139까지의 임시휴전 문서에 서명한다. 흑도 상중앙과 좌변을 동시에 안정시켰으니 사실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140도 처절한 안간힘. 우상귀 쪽 대마를 안정하고 싶지만 흑이 142로 뛰면 또 사방이 엷어진다. '고래 심줄' 같은 원성진의 타개 솜씨는 이후에도 끝없이 발휘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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