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기자의 Why?] '블러드' 흥행참패

톱스타 전지현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관심을 끌었던 '블러드'가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흥행에 참패했다. 개봉 첫 주 6만6794명으로 박스오피스 7위의 초라하다 못해 창피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 작품은 당초 한국을 넘어 아시아 스타인 전지현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본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의 인기 원작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만남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와호장룡'을 세계적으로 흥행시킨 아시아 최고의 제작자 빌 쿵이 가세했다. 또 홍콩 일본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다국적 자본 500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블러드'의 참패는 막을 수 없었다.

▶검증되지 않은 전지현의 티켓파워

'블러드'는 전지현의 첫 번째 원 톱 영화다. 전지현은 그동안 단독 주연을 맡은 적이 없었다.

'4인용 식탁'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데이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등에서 박신양 장혁 정우성 황정민과 각각 호흡을 맞췄다. 지금의 전지현을 존재하게 한 대표작 '엽기적인 그녀'마저도 차태현과 투 톱을 이뤄 두 사람의 앙상블로 흥행을 성공시켰다.

충무로의 한 제작자는 "전지현은 홀로 주연을 맡아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다. 또 인기와 인지도에 비해 출연 작품마다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이미 전지현의 티켓 파워는 한계를 보였다"고 평했다.

결국 전지현이 500억원 규모의 대작을 이끌 원 톱 배우로서 영화와 흥행을 이끌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평가다.

▶어설픈 CG

세계 영화시장에서 한국 관객의 눈높이는 할리우드 못지않게 높기로 유명하다. 특히 CG부문에 대한 평가는 날카롭다 못해 서슬 퍼런 칼날 같다.

한 CG전문가는 "한국은 '디워' '트랜스포머'처럼 완성도 높은 CG를 보여주면 흥행에 엄청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판타지 액션 영화 '블러드'에서 보여준 CG는 한국 관객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친다"고 적지않은 실망감을 보였다.

실제로 예고편에서 보여준 화려한 액션과 그래픽들은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지만 정작 스크린에서 확인한 CG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주인공인 뱀파이어 헌터 사야(전지현)와 악연으로 얽힌 중간보스급 괴물 CG는 어린이용 특촬 괴물 수준이라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3％ 부족한 액션 연기

전지현은 '블러드'에서 지금까지 전작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높은 수준의 액션 연기를 펼쳤다. 그녀는 시작부터 끝까지 날카로운 일본도를 휘두르며 하늘을 날아다닌다. 영화의 80％가 전지현의 액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심지어 여전사로 변신한 전지현의 액션 연기는 홍보의 단골 소재이자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런데 액션 장면은 보면 볼수록 부족함만 느껴진다. 전지현의 액션 장면은 대부분 느리게(슬로모션) 또는 빠르게(패스트모션) 특수 처리돼 그녀의 정확한 액션과 동작은 확인이 힘들다. 오히려 중간 중간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장도의 무거움과 동작의 버거움이 느껴질 뿐이다. 마치 현란한 편집 기술로 전지현의 부족한 액션 연기를 숨기려는 것처럼 보인다.

▶잃어버린 캐릭터

원작은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뱀파이어 헌터 사야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 감정 등이 잘 표현됐다. 화려하고 잔인한 액션뿐만 아니라 사야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 원작 인기의 비결이었다.

그러나 전지현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것처럼 상업적 이유로 액션만을 강조하다보니 캐릭터의 감정이 사라지고, 화려한 이미지의 껍데기만 남았다. 캐릭터가 탄탄하지 못하니 덩달아 드라마 구조도 약해져 클라이맥스인 사야와 오니겐(고유키)의 목숨을 건 결투마저도 시큰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