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4명이 해외 로케이션… 눈물겨운 충무로

제작비 한 푼이 아쉬운 시대엔 영화의 살림을 도맡는 제작부의 능력이 돋보이는 법. 관객 800만명을 넘긴 흥행작 '과속 스캔들'의 공연 장면은 애초 방송사 공개홀을 빌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제작부에서 하남시 문화예술회관의 협찬을 끌어내면서 3000만원가량을 절약할 수 있었다. 공연장 관객 장면엔 보조 출연자 600명이 필요했다. 밤샘 촬영하면 보조 출연자 1인당 하루 인건비는 10만원으로 치솟는다. 제작진은 카메라 3대를 동원해 전체 관객 신을 먼저 찍고 500명은 돌려보냈다. 나머지 100명을 이리저리 움직여 나머지 장면을 촬영했다. 이 영화의 이한나 프로듀서는 "스케줄을 미리 잘 짜놓으면 몇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민식이 주연한 영화 '히말라야'의 전수일 감독은 촬영 사전 준비가 철저하기로 이름났다. 그는 카메라 위치와 앵글, 렌즈, 조명 설계까지 촬영 전에 미리 세팅해놓는다. 전 감독은 "제작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촬영 전 사전 준비를 꼼꼼히 하는 것"이라며 "그러면 현장에서 시간과 경비를 모두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히말라야'를 찍기 전 촬영장소를 다섯 번이나 헌팅하면서 준비를 마쳤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영진위는 작년 한국 영화 평균 수익률은 －30%로 추정했다. 이는 2007년 －40.5%보다는 나아진 수치이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가 빚더미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제작비 절감 노력은 한국 영화가 거품시대를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촬영횟수를 크게 줄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승태 사무처장은 "수년 전만 해도 촬영회차 수가 100회를 넘는 영화가 수두룩했으나, 요즘엔 통상 50~60회로 크게 줄었다"며 "40회 이하로 촬영회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개봉한 한국 영화 '로니를 찾아서' 마지막엔 주인공 유준상이 '로니'를 찾아 방글라데시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해외 로케이션에 유준상과 동행한 제작진은 달랑 세 명. 심상국 감독, 촬영감독, 제작부장이었다. 통상 해외 로케이션 스태프 규모가 30~40명쯤인 것에 비하면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박상욱 프로듀서는 "영화 전개상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었으나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인원을 줄이고 또 줄여 4명짜리 초미니 로케이션이 됐다"며 "아마도 사상 최소 규모의 해외 촬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비 절감은 현재 한국 영화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는 2004년 41억6000만원으로 천장에 닿았다가 떨어지기 시작, 작년 30억1000만원(영화진흥위원회 잠정 집계)으로 줄어들었다. 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 비율은 2005년 19.3%에서 작년 35.2%로 크게 늘었다. 2007년만 해도 50억~60억원 규모 영화 비율이 21%를 넘었으나 작년엔 8.3%에 그쳤다.

제작비 절감 아이디어가 속출하면서 스태프의 '1인 다역'은 영화계 상식처럼 됐다. 저예산 영화의 대명사격인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경우 연출부가 미술을 담당하고 제작부가 메이크업과 의상을 맡았다. 배우 엄지원은 의상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을 손수 다 해결했다. 영화 말미 하정우와 함께 낫을 들고 등장하는 '배우'들은 현지에서 즉석 캐스팅한 제주도민들이었다. 이른바 '블록버스터'의 경우 스태프가 100명이 넘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스태프는 10명 남짓이었다. '로니를 찾아서'의 경우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돌리는 사이 감독이 구경꾼들을 통제했고, 제작부장도 카메라를 따로 들고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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