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신화, 그 위대한 서막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가 1963년 백남준(1932~2006)의 첫 전시를 기리는 기획전 《신화의 전시-전자 테크놀로지》를 지난 12일부터 열고 있다. 독일의 도시 부퍼탈에 있는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렸던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ic television)》은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었을 뿐 아니라 비디오 아트의 효시가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3대의 텔레비전을 등장시켜 '전자(electric)'라는 미디어를 예술에 새로 들여놓은 혁명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백남준은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예술에 대한 천재적인 영감을 보여줬다. 음악도로 출발했던 백남준은 피아노를 부수는 행동을 통해 정형화된 틀 안에 갇혀 있던 서구 음악의 역사를 일거에 파괴하는 대담한 상징성을 보여줬다. 〈산책을 위한 선(禪)〉이라는 제목으로 바이올린을 뒤에다 끌고 다니면서 명상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야말로 음악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음향과 설치,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러진 첫 멀티미디어 전시이기도 했다. 미술이나 음악이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예술문화사의 전환을 예고했던 대목이었다.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는 백남준의 첫 전시를 보고 파르나스 갤러리 주인인 롤프 예를링에게 편지를 보냈다. "백남준의 전시는 역사적인 모멘트이며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 전시 후에 나는 어떤 것도 새롭게 제안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작년에 센터를 개관했을 때는 부퍼탈 전시의 중요성을 지금만큼 인식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이번 전시는 기획전 자체보다 백남준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기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백남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끌어내기 전 도입부에 해당하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현대미술관은 백남준의 1963년 전시를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 3월 백남준의 첫 전시를 재현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 《신화의 전시-전자 테크놀로지》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TV를 위한 선(禪)〉과 같이 백남준 첫 전시의 일단을 엿보게 할 작품들과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가늠하게 할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벨기에 작가인 호노레 도의 설치 작품 〈지금 바로 모든 전자제품의 전원을 꺼주세요〉는 영상과 설치가 결합한 작품으로, 촉각적 이미지와 인간의 욕망이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확장한다는 의미를 보여준다. 이밖에 마리 바우어마이스터와 우지노 무네테루, 김윤호 등 국내외 작가 20여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기획전 외에도 상설전을 통해 백남준의 후기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031)201-8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