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인간 선언(宣言)

〈제11보〉(157~191)=프로기사들의 수 읽기는 엄청나게 깊고 정확해서 사람의 솜씨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일 때가 많다. 특히 이 바둑처럼 세계적 강자들의 바둑은 정교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게 마련. 그러나 그런 고수들에게서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튀어나올 때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한다. 신(神)이나 기계로 취급당하길 단호히 거부하는 '인간 선언'쯤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백이 ?V을 팻감의 교두보로 삼으려 하자 흑도 159에 뛰어들어 맞불을 놓는다. 168의 팻감이 오묘했다. 169는 초에 몰려 팻감 하나를 날려보낸 수. 문제는 그다음에 놓인 171이었다. 참고도 1 또는 A로 패를 받을 장면. 이 그림은 흑이 훗날 B에 두어 귀를 사는 수단도 남는다. 171 때 백이 패를 따내자 171은 완벽하게 한 수를 논 셈이 됐다.

결국 173을 생략할 수 없어 174로 '한 수 늘어진 패'가 이젠 단패(單覇)로 바뀌었다는 점. 171은 잘 두어오던 야마시타가 '인간 선언'에 나선 거의 망착(妄着) 수준이었다. 190 시점에서 흑의 팻감은 이제 좌하귀뿐. 191로 끼웠고 백도 마지막 기로에 섰다. 응수할 것인가, 외면하고 우상귀 패를 해소할 것인가. (161 167 175 181 187…▲, 164 172 178 184 190…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