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중원(中原)의 추억

〈제13보〉(213~240)=승리는 종반에 강한 자의 몫이다. 초반과 중반의 반짝 우세는 언제나 옛 추억거리로만 남을 뿐이다. 이 세상 모든 승부가 그렇다. 프로 복싱이나 종합격투기는 라운드별 채점을 합산하지만 종반 파이팅에 가산점수를 준다. 만약 길거리 싸움이었더라면 막판에 힘이 남은 쪽이 승리하게 마련이란 원리다. 바둑도 마찬가지. 서로 실수를 교환하더라도 나중에 실수를 범하는 쪽의 피해가 훨씬 더 크다.

신들린 솜씨로 종반을 헤집던 백, △라는 마무리 펀치를 작렬한다. 213은 어쩔 수 없는 굴복. 참고도 1로 막아 저항했다간 10까지 보기 좋게 걸려든다. 그런 뒤 214로 손을 돌려 그쪽 약점을 추궁, 217까지 또 한 번 굴욕을 강요한다. 흑으로선 피눈물이 쏙 빠지는 장면. 이 대목에서 백은 200여수에 이르는 기나긴 열세를 뒤엎고 마침내 첫 역전을 이루었다.

226은 얼핏 한가한 수 같지만 228을 보고 있다. 결국 232까지 상변에서 20집가량의 황무지가 백의 옥토로 편입됐다. 그리곤 240. 비참하게 건너면서 흑군은 한때 중원을 호령하던 시절의 자신들 말발굽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지는 않았을까. 흑도 그 사이 우상귀와 좌변을 지켜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이제는 반면(盤面)으로 비슷한 형세. 240수 이후는 총보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