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삐그덕대는 희망이 정지된 삶보다 낫다

1500㏄ 자동차의 속도로 세상을 보면 희망은 페라리처럼 빨라 가뭇없다. 그러나 자전거의 속도로 세상을 보면 125㏄ 오토바이에도 희망이 있다. 25일 개봉할 우루과이 영화 '아빠의 화장실'은 고물 자전거의 속도로 세상을 보는 영화다. 과속(過速)하지 않으므로 절로 지혜롭고 연료가 필요 없기에 꿈도 소박하다.

브라질 국경에 가까운 우루과이 마을 멜로의 남자들은 브라질에서 물건을 사와 가족을 부양한다. 생필품도 사지만 대개 되팔 물건들을 사온다. 비토(세자르 트론코소)는 하루가 멀다 않고 자전거로 왕복 60㎞를 달려 브라질에서 물건을 사온다. 그에겐 세금을 면해주는 대가로 물건을 뜯어가는 악질 이동순찰대가 골치 아픈 존재다. 이런 마을에 세계 순방 중인 교황이 온다는 소식과 함께 브라질에서 수만명 군중이 따라올 것이란 소문이 돈다. 사람들은 한 몫 장사를 위해 은행 대출까지 받아 노점을 준비한다. 비토는 화장실을 지어 돈을 벌 궁리를 한다. 자신에겐 오토바이, 딸에겐 학비, 아내에겐 밀린 전기세를 모두 해결해 줄 큰돈을 벌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깨끗한 양변기까지 구해온다. TV에서는 교황을 따라올 군중이 20만명까지 될 거란 보도가 나온다.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은 고물 자전거 체인처럼 덜컹거린다. 기름칠이 마른 체인은 '촤르르' 소리 대신 '삐그덕삐그덕' 한다. 그의 꿈은 고작해야 125㏄ 중고 오토바이를 사는 것이다. 아내는 돈이 생기면 갖고 싶은 것으로 '옷감에 먹일 풀'을 꼽는다. 그런 부모가 싫은 딸에겐 TV 리포터가 되어 고향을 떠나는 게 꿈이다.

아빠가 간신히 지은 화장실은 물론, 마을 사람들의 부푼 꿈은 허무하고 안타깝게 물거품이 된다. 물질적 상실은 그러나 가족에게 의외의 희망을 안겨준다. 두 다리로 걷더라도 믿음과 희망이 있는 편이, 그보다 훨씬 형편이 좋으면서 반목하는 편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끝에서 울컥하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 뛰어난 영화였지만, 실화라는 걸 알았을 땐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