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무송, “나이 마흔에 처음 아버지 칭찬을 들어”

배우 전무송(68)이 주연을 맡은 영화 ‘아버지’의 개봉을 앞두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전문송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고독한 아버지 윌리 로먼을 연기하는 등 그는 다수의 작품에서 아버지를 연기했다. 전무송의 친부, 그리고 무대 위에서 만난 삶의 아버지들이 그의 연기에 녹아 있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아버지의 마음이 아마 이런 것이겠지요. 자식이 제대로 성장하길 바라는 걱정과 근심. 재벌 아버지, 대통령 아버지, 농부 아버지가 각각 다르더라도 자식을 낳고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바르게, 제대로 키우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제대로 산다'는 것이 참 어렵지요."

"너는 매일 연습만 하냐?" 아버지는 배우 전무송을 마땅찮게 바라보곤 했다. 당시 명문 학교인 인천중학교에 입학한 그에게 아버지는 "나는 못 배웠으니 너라도 판·검사가 돼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그는 공고에 진학했고, 결국 배우의 길로 들어섰을 때 아버지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영화 '만다라'(1981년·임권택 감독)가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고 전무송의 얼굴이 신문에 큼지막하게 나자 아버지는 처음 밝게 웃으셨다. "배우,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냐. 10년, 20년 걸리는 거라고." 아버지의 칭찬을 처음 들었다. 그 때 전무송의 나이 벌써 40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년 드라마센터 1기로 입학한 그는 늘 배가 고팠다. 점심 때마다 친구들의 도시락을 먹던 그는 방학이 싫었다. 학생들이 연습실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흘 하고도 두 끼를 굶은 어느 날, 그는 분장실에 누워 잠을 잤다. 친구가 그를 흔들어 깨우자 전무송은 힘없이 대꾸했다. "에너지 없어지니까 건드리지 말아 줄래."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폐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돈으로 설렁탕을 먹고 남은 돈으로 쌀과 단무지를 사서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은사인 극작가 유치진을 만났다. 유치진은 그에게 "아침은 먹고 다니냐?"라고 물었다. 그제서야 그는 바닥에 떨어진 돈이 그분의 것임을 눈치챘다. "배우보다 사람이 먼저 되어라"고 말하던 유치진은 그에게 또 다른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다.

전무송은 영화 '아부지'에서 소를 파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극 중 아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소를 팔기로 결정한 그는 "너는 내 맘 알지?"라며 소의 등을 쓰다듬는다."농사꾼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아버지가 결국 소를 팔고 맙니다. 자기 확신에 대한 양보이자 희생이죠. 이 시대에 윗사람은 있지만 아버지, 어른은 없다고 말하는 것도 희생할 줄 모르는 중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는 "나이를 먹어서도 자기 얼굴을 보고 부끄러움, 수치를 느낄 수 있는 자가 어른이자 아버지란 생각이 듭니다"고 덧붙였다.

배해성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박철민 박탐희 등이 출연하는 '아부지'는 저예산 영화로 7월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무송은 "바라는 거요? 아버지가 소를 팔 때, 또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 등을 보면서 관객들이 어떤 감정과 정서를 갖기 바랄 뿐입니다. 그 느낌은 각자 다르겠지요"라고 영화의 취지를 설명했다.

'화녀82'(82년·김기영 감독) '빠담풍'(92년·엄종선 감독) 등에서 개성 강한 역을 맡았던 그는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야누스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지금도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선악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역을 하고 싶어요. 이상하게 요즘 잘 안 시켜 주더라구." 못내 섭섭한 아버지, 전무송의 노안(老眼)에는 문득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지나갔다고 세계일보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