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바람·물·빛, 미술관을 껴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자리 잡은 제주도립미술관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이 5m에 가까운 지층(紙層)이 눈에 들어온다. 김주연의 설치작품 〈Metamorphosis〉로, 3.8t 분량의 신문을 한 장 한 장 켜켜이 쌓은 뒤 바깥벽에 브로콜리 등의 씨를 발라 싹을 틔우고 있다. 작가는 "한달 반에 걸쳐 녹색으로 뒤덮은 뒤 시들어 죽는다"며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아내는 신문과 그 위에서 자라는 식물을 통해 삶과 생명의 주기(週期)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도립미술관이 개관(26일)을 기념해 열고 있는 국제전 《숨비소리》에는 생(生)과 사(死)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숨비소리'는 해녀(海女)가 물질로 숨이 차면 물 위에 올라와 가쁘게 내뱉는 숨소리를 말한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는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죽음에 대한 단상을, 일본 작가 오니시 야수아키는 대형 비닐봉지를 통해 숨 쉬는 허파를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를 비롯해 조각과 설치, 비디오 아트까지 모든 분야가 망라됐고, 국내외 작가의 실험적인 작품이 주를 이뤄 "준(準) 비엔날레 같다"는 평을 듣고 있다.

《숨비소리》전(展)은 특히 제주도에 풍부한 바람·물·빛을 문화 코드로 삼아 이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이 눈길을 끈다. 바람·물·빛은 곧 에너지로서 새로운 창조의 힘을 의미한다. 키네틱 아티스트 최우람의 〈Urbanus〉는 고대 생물체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기계 조각품이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는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작품을 말한다. 암컷이 빛을 내면 수컷이 반응하는 작품으로 고대와 현대, 생물체와 기계가 묘하게 혼재하는 작품이다. 전시작품 중에는 관람객과 상호 작용하는 작품이 많은데, 이배경의 〈Mirror of Mind〉는 관람객이 내는 호흡과 소리에 따라 화면 속 그림자가 다르게 반응한다.

제주도립미술관 개관전의 대(大)주제는 《환(環)태평양의 눈》이며, 《숨비소리》는 네 가지 전시 중 중심을 이루고 있다. 《숨비소리》 외에 제주 출생이거나 제주에서 작품 활동을 벌였던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과 《바다를 닮은 화가: 장리석》, 《세계어린이 환경미술제》가 함께 열리고 있다. 개관전을 맡은 김영호 총감독(중앙대 교수)은 "제주도가 '환태평양의 눈'이라는 의미에서 개관 전시 주제로 정했다"면서 "제주 미술이 외부와 소통하고 이슈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이어진다. (064)710-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