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의 '빛'을 만드는 여자

30일 국내 개봉할 미국 애니메이션 '업(Up)'은 미국서 개봉 한 달 만에 2억5000만달러(약 3170억원) 흥행을 기록한 화제작이다. 70대 할아버지가 초등학생 꼬마와 함께 떠나는 모험을 그린 이 영화는 유명 영화평론 사이트 '로튼토마토닷컴'에서 신선도 지수 97%(100% 만점)라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픽사 스튜디오가 내놓은 이 작품의 조명감독(lighting technical director)은 한국인 조예원(37)씨다. 지난 2004년 픽사에 입사, 애니메이션 '카', '라따뚜이', '월―E' 제작에 참여한 데 이어 '업'의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픽사 스튜디오가 '업' 개봉에 앞서 전 세계 기자들을 미국 현지에 초청해 열었던 시사회에서 조씨를 만났다. 그녀는 6일 국내 첫 시사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조명감독이 하는 일은, 실사영화에서 세트에 조명 설치하는 작업을 컴퓨터에 설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미술 파트와 함께 영화의 시각적 부분을 담당하죠." 그림자 처리는 물론, 색깔이나 빛의 밝기와 톤을 컴퓨터로 일일이 조정하는 역할이다. 그녀는 "조명에 따라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 내 특정 부분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조씨는 "'업'은 스토리보드를 처음 봤을 때 이미 눈물이 날 정도로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며 "무척 재미있고 보람 있게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씨가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조명감독이 된 건 그녀 자신 말마따나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예원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한 그녀는 서울대 조소과를 거쳐 산업디자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가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건 대학원 졸업 후 뉴욕의 SVA(School of Visual Arts)에 유학했을 때다. "뉴욕 생활 3년 반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죠. 그곳의 교육방식과 학생들의 상상력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를테면 SVA에서 과제로 '재크와 콩나무'를 변형한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게 있었다. 조씨는 콩나무 대신 다른 나무를 그려 갔는데, 일본 학생은 아예 이 동화를 호러영화로 바꾼 스토리보드를 가져왔다. "저를 비롯한 한국 학생들은 그림 실력은 뛰어나지만 상상력이 다른 나라 학생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SVA 졸업 후 드림웍스에서 '슈렉2' 작업에도 참여했던 그녀는 이어 세계 애니메이터들의 '꿈의 직장'이란 픽사에 자리를 잡았다. "드림웍스나 픽사 모두 가능성을 높이 사고, 일을 믿고 맡기는 면에서 다른 직장과 차별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일을 맡으면 사내 공식 스크리닝 외에는 거의 참견이 없어요." 조씨는 현재 '토이스토리3'에 조명 파트를 맡아 작업 중이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소재로 세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제 포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