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지는 않지만 꽤 짜릿한 ‘자극’
입력 : 2009.07.02 17:53
영화 ‘오감도’
전라의 여인이 모로 누워있는 뒷모습. 영화 ‘오감도’의 홍보는 이 파격적인 티저 포스터로 시작되었고, ‘에로스’라는 단어는 이후 영화를 알리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쓰였다. ‘오감도’가 ‘에로스’를 전면에 내세운 상업영화인 데다가, 다섯명의 역량 있는 감독들과 대스타와 신예를 아우르는 16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임이 점차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은 날로 부풀었다.
‘오감도’ 이전에도 적잖은 옴니버스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사랑’ 또는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거나 혹은 ‘인권’ 같은 시사적인 문제를 환기하는 등 모종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어느 정도 영화 안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모처럼 만들어진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가 다루는 주제는 생각의 여지를 주기보다 본능에 보다 충실한 ‘에로스’라니…… 어찌 기대가 되지 않겠나.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오감도’는 야하지 않다. 쟁쟁한 스타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외면(육체) 연기를 원했던 관객들의 아쉬움 깃든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비록 ‘오감도’가 티저 포스터만큼의 선정성도 갖지 못했다 하여 영화 자체를 일찌감치 평가절하 하는 것은 다소 억울하다 느껴진다. 아직 실망은 이르다.
영화가 표방한 ‘에로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성욕’을 일으키는 선정적인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자극’ 그 자체에 진정한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영화는 총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서로 아주 이질적인 이야기와 정서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매우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각각의 단편을 그나마 하나로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손과 입술의 촉각뿐 아니라 상대의 몸을 샅샅이 훑는 시각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오감의 자극일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스킨십’은 그다지 야하지 않지만 꽤 짜릿한 느낌을 준다. 자극 그 자체를 유의미하게 받아들이도록 사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분위기 조성을 해놓은 탓이다.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처음 키스를 하기까지 쏟아지는 남자의 자질구레한 내레이션들, 젊은 부부의 안타까운 포옹을 설명하기 위한 애틋한 숨바꼭질,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드러내는 기묘한 판타지 등 영화는 서로 아주 다른 스타일로 다양한 형태의 로맨스를 다루면서 ‘오감이 주는 자극’에 집중한다.
이렇듯 영화 ‘오감도’를 보기 전에 관전 포인트는 살짝 수정을 가해야 할 듯 하다. 그리고 영화가 성의를 다해 제공하는 ‘자극’에 성실히 반응하고자 한다면 더 좋겠다. 정말 자신을 자극했던 그 누군가와의 첫 감촉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 his concern (주연 : 장혁, 차현정 / 감독 : 변혁) - KTX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첫 관계를 갖기까지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남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섬세하게 그렸다.
▲ 나 여기 있어요 (주연 : 김강우, 차수연 / 감독 : 허진호) 곧 맞이할 슬픈 이별을 앞둔 젊은 부부의 안타까운 포옹. 집안에서 벌이는 부부의 숨바꼭질이 애틋하고 몽환적이다.
▲ 33번째 남자 (주연 : 배종옥, 김민선, 김수로 / 감독 : 유영식) 깐깐한 연기파 여배우와 귀신 울음소리 하나 잘 못 내는 신인 여배우, 그 사이에 낀 소심한 영화감독. 이 서툴기만 한 ‘초짜’의 감각을 깨우는 노회한 여배우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 끝과 시작 (주연 : 엄정화, 김효진, 황정민 / 감독 : 민규동)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는 와중에 죽음을 당하고 아내는 그 후에도 여전히 남편을 잊지 못해 남편과 함께 산다. 그런 그의 집에 흘러 들어온 남편의 애인. 이제 이 세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환상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 순간을 믿어요 (주연 : 김동욱, 신세경, 송중기, 이시영, 정의철, 이성민 / 감독 : 오기환) 고등학생 세 커플이 어느 하루를 정해 서로의 파트너를 바꿔 지내보기로 한다. 어린 친구들의 낯설고 수줍은 스킨십이 오고 가던 어느 날을 귀엽게 그렸다.
7월 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