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뱃속 빌어먹다

〈제8보〉(106~125)=한평생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두 차례 큰 실수를 범한다. 어지간한 군자(君子)도, 제법 인정받는 수재라 하더라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흔히 바둑 한 판을 인생에 비유하거니와, 여기서도 믿기 힘든 상황이 발생한다.

우변에서 한창 패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국면. 흑이 막 ▲로 팻감을 써왔다. 우변 백의 생사가 걸려 있는 만큼 팻감을 불청하고 패를 해소하는 것이 정답. 참고도의 1에 두어 흑 3점을 잡고 살아가야 한다. 흑은 2로 빠져 우상귀 소유권 등기에 나서겠지만, 백 3도 제법 큰 곳이다. 이 진행이었다면 백중한 형세였다는 중론.

하지만 흑 ▲ 때 백돌이 놓인 곳은 106이었다. 눈을 의심할 만한 이 수에 창하오가 투입한 시간은 무려 14분30초. 물론 이 바둑 최장고 수다. 결국 112로 패를 해소하는 대가로 111, 113을 연타 당했으니 이래도 역전이 아니면 이상하다. 배(梨) 주고 뱃속 빌어먹은 격이라고나 할까. 114를 챙겼지만 125까지 '세력'이 하루아침에 '곤마'로 쫓기기 시작했다. 인생이고 바둑이고 지나치게 신중하다 보면 망조가 끼는 법이거늘….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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