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페이퍼진] 유종호 영화 에세이 '내가 본 영화'

'제3의 사나이', '나의 청춘 마리안느', '로마의 휴일'.... 중장년 세대에게 젊은 날의 추억을 새삼 환기시켜주는 영화들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문학평단의 거목인 유종호씨(74)가 영화 에세이 '내가 본 영화'(민음사)를 출간했다. 지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일보에 '추억속 내 영화'라는 타이틀로 연재한 시리즈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전문 영화평론가의 글처럼 현학적이거나 현란하지 않고 솔직담백하다. 영화 속에서 문학을 읽고, 사회상을 끄집어내고, 삶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 물처럼 흐른다. 동시대를 살아온 독자라면 그 영화들과 함께 흘렀던 인생, 그리고 시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될 만하다.

환도 직후인 1953년 수도극장에서 본 첫 외화 '여수'의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 곤곤한 시절에 캄캄한 암실에 들어가 머나먼 이국에서 벌어지는 선남선녀의 슬프고 아름다운 얘기를 구경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현실도피였다."

이렇게 시작된 저자의 영화편력은 '개선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양철북' '지옥의 묵시록'을 거쳐 비교적 최근작인 '쇼생크 탈출' '데드맨 워킹' '밀리언달러 베이비'까지 이른다. 대개가 수작으로 평가받은 작품들이다. 또 문학평론가답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많다는 것, '라쇼몽' 등 일본영화에 대한 글도 상당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원작소설과의 비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의 장단점을 따져보고, 캐릭터가 지닌 의미를 풀어낸다. 제임스 딘, 오드리 햅번처럼 어렵던 시절, 아시아 변방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던 할리우드 스타들, 안나 카레리나, 제인 에어 등 문학과 영화 텍스트속에서 영원불멸한 캐릭터들이 살아서 꿈틀댄다.

저자는 "영화의 고전은 빠른 속도로 명멸하고 변하겠지만 당대 사회 반영도가 기막히게 직접적이라는 점에서 대중 예술로서의 영화의 생명력은 강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