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레디, 액션!… 영화 촬영, 이젠 인터넷으로 통한다

할리우드 감독이 서울 강남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그는 배우 분장부터 동선(動線), 세세한 표정 연기까지 빼놓지 않고 현장을 총괄 지휘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 없었다. 분신술을 쓰지 않고서 이게 가능한 일일까. 할리우드 감독 가브리엘 코완(Cowan·36)은 11일 전화기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요, 가능하죠."

영화 '스크림' 2·3편의 음악감독 출신인 코완 감독은 저예산 공포 영화 '더 그로스(The Growth)'를 찍는 동안 현장을 지키기보다는 인터넷 쓰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감독은 미국 LA 집에 앉아 인터넷 '구글 비디오(구글의 동영상 공유 서비스 프로그램)'를 통해 서울과 LA에서 이뤄지는 촬영을 꼼꼼히 '감독'한 것이다. 배우 오디션, 연기 리허설, 스태프 회의, 촬영까지도 모두 이 방식으로 끝냈다. 코완 감독은 "총 제작비가 30만달러(약 3억9000만원)밖에 안 되는 초저예산 영화인 데다, 공포 영화라 시각 효과가 중요해 다른 곳엔 최대한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어요. 같은 날(3월 30일) LA에서도 촬영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스태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방식이니 따로 사무실이 필요 없었다. 그는 거실에 3대의 컴퓨터를 설치했다. HD 화면 구현이 가능한 컴퓨터로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촬영을 실시간으로 지켜봤고, 그 옆의 컴퓨터엔 통역기를 설치해 한국인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채팅 프로그램인 지챗(gchat·구글 채팅 프로그램)과 화상 인터넷 전화인 스카이프(skype)를 이용해 여러 명이 동시에 통화했다. 또 다른 한 대의 컴퓨터로는 LA 곳곳에서 진행되는 촬영을 동시에 점검했다. 한국계 촬영감독인 토니 전(전우성)씨와 한국측 프로듀서인 김미경씨가 미리 서울에서 장소 헌팅을 끝낸 터라 강남역 4거리에서 HD 카메라를 단 12m짜리 크레인을 동원해 촬영을 마쳤다. 물론 감독은 현장을 찍는 카메라를 통해 LA에서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그는 "구글에서 어떤 도움을 받은 건 아니지만, 이 시스템이 일종의 '촬영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 장담했다. 코완의 방식을 이용하면 한국에서도 해외 어떤 곳에서든 로케이션 촬영을 지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코완 감독은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해외 로케이션을 지도하는 건 할리우드에서도 아주 새롭게 시도한 혁신적인 시스템"이라며 "기술만 잘 이용하면 적은 예산으로도 효율적이면서 품질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영화는 이미 영국·미국 등지의 배급 일정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