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외로운 투사(鬪士)

〈제2보〉(12~27)=이세돌은 왜 18개월이나 바둑계를 떠나는 아픔을 자청했을까. 동료 프로기사들이 자신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결의한 데 대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바둑은 대표적인 개인승부로 꼽히지만 그래도 외톨이가 되면 견디기 어렵다. 국제전이나 원정대국 때는 더욱 그렇다. 곤지암에서 열린 대국 전야제 때 이세돌은 동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뭔가 서먹서먹해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정시에 나타난 그는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식사도 생략한 채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백은 '가'로 붙여가지 않고 12로 귀를 지켰다. 13을 기다려 14로 굳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15는 쿵제의 견실한 기풍이 물씬 풍기는 착점. 흑이 만약 이세돌이었다면 참고도를 택하지 않았을까. 15때 백 '나'로 지키는 식의 소극책은 이세돌의 사전엔 없다. 이제 와서 17의 침입은 당연. 18은 대치(對峙)하는 중앙점으로, 바둑퀴즈에 날 만한 문제다.

20분이나 이런저런 구상에 골몰하던 쿵제, 19, 21의 상용수법을 들고 나온다. 이렇게 되면 27까지는 자주 나오는 정형(定型). 흑의 외세가 두터워졌다. 여기서 백도 부분적으론 '다'로 지켜두는 것이 단단한 수. 하지만 선수(先手)를 내주는 것은 발이 느리다. 그렇다면 백의 다음 행선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