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뭉클한 향수를 우직하게 짊어진 픽사의 열번째 영화 ‘업’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험가, 찰스 먼츠를 동경하며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을 꿈꾸는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소년 앞에 그보다 더 열정적인 모험가 소녀가 나타나 소년의 마음을 빼앗았다.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가슴 떨리는 모험을 꿈 꾸며 소년과 소녀는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했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 행복에 지나치게 겨웠던 것일까. 소년과 소녀, ‘칼’과 ‘엘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때까지 둘만의 보금자리를 차마 떠나지 못했고 칼은 엘리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다.

동네의 거리와 집들이 신식으로 바뀌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낡고 닳아서 초라하게 덩그러니 남은 칼과 엘리의 정든 집, 그리고 늙은 칼. 도시화의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칼은 마침내 수십 년을 미뤄둔 모험을 떠나기로 한다. 부부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던 낡은 집과 함께.

이렇게 해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알록달록 풍선들이 달린 집을 타고 하늘을 나는 78세 할아버지의 모험기, 영화 ‘업’이 탄생했다. ‘업’은 픽사의 열 번째 애니메이션이다.

‘토이 스토리’에서 ‘월-E’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라인업을 갖춘 픽사의 명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픽사의 자자한 명성은 매번 애니메이션 영상 기술의 최신식을 선보이는 데서도 나오지만, 동시에 웃음과 눈물을 동반한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소홀하지 않는 데서도 나온다.

그 대단한 픽사의 열 번째 작품이 풍선 달린 집을 타고 떠나는 모험기다. 거대한 첨단의 비행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패러글라이딩’ 정도는 타고 다녀야 모험가로서 ‘폼’ 좀 날 법도 한데 그냥 집 통째로 풍선을 달아서 띄웠다. 픽사의 상상력 치고는 무척 ‘단세포’스럽다. 게다가 주인공은 78세 고집불통 노인에, 조금 둔해 보이는 8살짜리 꼬마 소년이다.

‘단세포’적인 데다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은 이 이야기는 하지만 픽사 작품들 중 훈훈한 온기가 가장 많이 서린 영화가 됐다. 그것은 아마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소재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훈훈한 온기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상영되는, 픽사표 영화의 부록과도 같은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영화 속 사소한 소품들에까지 온전히 담겨 있다. 영화 시작 전, ‘구름 조금’이라는 타이틀의 짧은 애니메이션이 주는 속 깊은 메시지에 대한 탄성이 그치기도 전에 꿈을 공유했던 평생의 반려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추억이 담긴 액자들, 오래된 안락의자 두 개, 부부의 한 평생을 담아낸 모험일지 다이어리 등,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게서 가슴 뭉클해지는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부부가 수십 년을 함께 했던 2층집을 먼저 세상 떠난 그리운 아내의 분신으로 삼아서, 그 집에 풍선을 매달아 하늘에 띄우고 또 어깨에 짊어지기도 하며 기어코 남아메리카의 파라다이스 폭포까지 가져다 놓는 바보스러울 정도의 우직함은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하다.

픽사가 앞으로 갖춰나갈 라인업들이 영화 ‘업’의 정서를 어느 정도 반영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업’은 분명 픽사의 열 번째 영화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기술적 노하우를 한껏 뽐내면서도 아날로그의 향수를 유감없이 담아냈으니 과거(역사)와 미래의 절묘한 만남이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영상 산업을 더욱 최첨단으로 이끄는 애니메이션 영화 장르에서, 이토록 풍부한 아날로그적 정서를 경험해본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생산공장이라고 평가되는 픽사에서 그들의 열 번째 영화의 스토리는 오히려 ‘백 투 더 패스트(Back to the Past)’하는 걸 보니, 픽사가 앞으로 선보일 애니메이션의 방향성이 언뜻 짐작되기도 한다. 그러니 실력 있는 애니메이션 영상 기술가이기에 앞서 훌륭한 스토리 텔러로서 픽사의 앞으로 활약이 관객들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다.

7월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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