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스토리] 박중훈이 조연을 선택한 이유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선택하기 위해 심사숙고했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톱스타' 박중훈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해운대'(감독 윤제균)에서 당당히 조연으로 출연해 화제다.

영화계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에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일이다. 전작 '라디오 스타'로 대박을 터뜨리며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쥔 박중훈의 조연 출연이란 게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재난 영화처럼 '해운대'도 주인공이 여럿이다. 설경구-하지원, 박중훈-엄정화, 이민기-강예원 등의 세 커플이 영화 전체 이야기와 감정을 이끌고 나간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화려한 캐스팅에 눈길이 가지만 주연급 배우의 조연 출연에도 관심이 간다. 자존심만은 할리우드 스타들 못지않은 한국의 주연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조연으로 출연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박중훈은 "'라디오 스타' 이후 시나리오는 계속 들어왔는데 마땅한 작품이 없었다. 계속 시나리오를 고르다 보니 차기작이 점점 늦어져 3년이나 걸리게 됐다. '라디오 스타'를 끝내고 '이번엔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선택 해야겠다'란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고 조연 출연의 이유를 밝혔다.

박중훈이 고르고 고른 시나리오가 '해운대'다. 누가 봐도 '해운대'는 리스크가 큰 영화였다. 한국영화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실제 같은 CG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국 관객의 CG 눈높이는 할리우드도 울고 갈 정도로 상당히 높다.

박중훈은 "'해운대'를 선택할 때 CG를 먼저 생각하진 않았다. CG는 이야기를 떠받들어주는 도구일 뿐이고, 영화는 결국 이야기다. 이야기가 숙련된 과학을 만난 게 재난영화다. 미국은 CG에 관심을 안 갖는다. 이제 한국영화도 CG에 주목하는 일이 없기를 개인적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어쩌면 이미 영화 속 김휘 박사처럼 모든 걸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 개봉 전에 만난 박중훈은 강한 자신감과 함께 겸손하게 미리 흥행을 점쳤다. 그는 "'해운대'엔 후회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며 "촬영 때도 그랬지만, 제작진 모두가 자신감에 차 있다"고 흥행을 기대했다.

1990년대부터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끌며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 박중훈. 아무도 밟지 못했던 할리우드 땅을 밟으며 영화 선진국을 가장 먼저 체험한 박중훈. 그의 오랜 경험에 따른 '동물적 감각' 또는 '영화=이야기'라는 기본기로 돌아간 박중훈의 깜짝 조연 결정은 분명 성공작이다.

영화 '해운대'엔 배우들의 명성이나 CG보다 연기자들의 캐릭터와 연기, 스토리가 바다처럼 살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