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선택] 다 비워야 다시 날 수 있어

이 영화는 왜 어떤 영화인들은 실사영화 대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지에 대한 대답이자 정답이다. 가족영화를 찾기 어려운 시대에 가족들을 매표소 앞에 줄 서게 할 구실이며, 월트 디즈니의 꿈을 계승하는 후배들의 역작이다. 픽사 스튜디오의 새 애니메이션 '업(29일 개봉)'은 금주 개봉 영화 중 최고의 추천작이며, 올 들어 개봉한 모든 영화 중에서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단짝이었던 엘리와 결혼해 해로(偕老)한 노인 칼 프레드릭슨(성우 에드워드 에스너, 한국어 더빙 이순재)은 아내 엘리를 먼저 떠나 보낸다. 평생 살던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개발업자는 집을 팔라고 종용하지만, 프레드릭슨은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버릴 수 없다. 급기야 요양원 사람들이 데리러 오던 날, 프레드릭슨은 수많은 풍선을 지붕에 매달아 집을 통째로 띄운다. 엘리와의 평생 꿈이었던 '파라다이스 폭포' 탐험을 떠나는 길, 봉사활동 숙제를 하러 찾아왔던 꼬마 러셀(조던 나가이, 정민석)이 얼떨결에 동행한다.

70대 노인과 초등학생 꼬마의 탐험기를 그린 이 애니메이션에는 이야기와 감동, 웃음과 모험이 그 어떤 영화보다 잘 짜여 있다. 영화 초반 노부부의 사별 장면과 후반의 추억 장면은 뭉클하고, '말하는 개들'은 나올 때마다 우습다. 초등학생 여름방학용 만화영화로 얕보지 말 것. 아이를 위해 고른 이 영화가 어른인 당신의 눈물샘과 웃음보를 터뜨릴 것이다.

'업'은 아내와 평생 행복했으나 사별 후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고집불통 노인을 먼저 지켜본다. 그는 은퇴해 현관자물쇠 5개 달린 집에 혼자 살면서도 매일 양복을 갖춰 입고 테라스에 나와 앉아서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철부지 꼬맹이가 나타나지만 그는 안중에도 없다. 그 여생의 의미는 아내를 추억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꼬마와의 우여곡절 여행이 시작되면서 그는 조금씩 세상에 마음을 열게 된다.

풍선이 터져 없어지면서 집이 더 이상 날지 않을 때, 그래서 꿈이 무산되려 할 때 노인은 평생 간직한 세간살이를 모두 내버려 집을 다시 띄운다. 내 안의 것을 비우지 않고는 새로 시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영리한 애니메이션은 잘 알고 있다.

영화에서는 '파라다이스 폭포'가 어딘지 설명하지 않지만, 제작진이 모델로 삼은 곳은 베네수엘라의 세계 최고 높이 앤젤 폭포(979m)다. 주인공 칼 프레드릭슨은 노년의 미국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를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자막판도 좋지만 이순재의 목소리 연기가 뛰어난 더빙판도 그 못지않다. 영화홍보차 내한했던 픽사 관계자가 이순재와 만난 뒤 "영화 주인공과 이미지가 너무 비슷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전문가 별점

어른과 아이의 행복한 만남, 현실과 환상의 업(up)되는 재미.

― ★★★★ 이상용·영화평론가

당신이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싶었던 모든 것, 그 이상! 

― ★★★★ 황희연·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