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부자(父子)의 추억

〈제6보〉(83~101)=아빠는 6세 아들에게 매일 밤 고급 사활문제를 던져주고 풀어야만 잠을 재웠다. 쉽게 안 풀리는 날은 전쟁이었다. 아빠가 "넌 프로기사가 될 소질이 아닌가 보다. 그냥 자라"고 하면, 꼬마는 분함과 졸음으로 울먹이면서도 새벽 2·3시까지 매달려 풀어냈다.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 밀어 넣는 심정이었다"는 게 아빠의 회상. 아들은 "프로 진출 후 사활만큼은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박영훈 부자(父子) 얘기다.

백 △를 본 흑, 83에 붙여 중앙의 영지(領地)화에 주력한다. 84는 용의주도한 수. 무심코 '가'에 젖혔다간 흑87 끊음 때 만만치 않다. 86 단수에도 잇지 않고 87로 두들긴 수, 88의 압박 모두 초1류들다운 화려한 공방이다. 한데 여기서 문제의 89가 터졌다. 참고1도 1을 선수 후 3, 5가 훨씬 현실적이란 것.

이 국면의 핵심은 90의 자리였다. 뒤이어 92로 뛰니 중원의 주도권은 누가 봐도 백에게 넘어갔다. 89가 패착 1호, 90과 92는 승착에 해당한다. 93은 참고2도를 본 눈물겨운 후퇴. 94가 컸다. 흑은 97의 끝내기 요령(1집 득)을 거쳐 101에 붙인다.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한 혼신의 추격에 나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