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영화, 비인기 종목이 인기 왜?

스포츠영화 붐이다. '국가대표'(감독 김용화)가 선두에 나섰다. 개봉 10여일만에 20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한달 전 개봉한 '킹콩을 들다'(감독 박건용)는 125만명을 동원했다. '죽음의 조'에 가까운 대진표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이다. '킹콩을 들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와 맞대결했다. '국가대표'는 180억원이 투입된 대작 '해운대'와 싸우고 있다. 스포츠영화가 릴레이로 개봉되고,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두루 호평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킹콩을 들다'와 '국가대표'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비인기 종목을 소재로 한다. '킹콩을 들다'는 역도, '국가대표'는 종목 이름조차 생소했던 스키점프 대표선수들 얘기다. 410만 관객을 돌파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도 핸드볼이라는 비인기종목을 소재로 했다. 그런데도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 스포츠영화에서는 왜 비인기 종목이 인기일까.

역도 등 헝그리 종목 소재 …'비주류 인생' 주인공 고난 극복하는 과정 감동 … 관객 대리 만족 느껴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스포츠영화의 주인공은 대개 사회의 비주류, 아웃사이더들이다. 현실은 팍팍하지만, 이들에게는 꿈이 있다. '못난 것들'끼리 모여,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모아, 끊임없이 도전한다. 영화는 이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킹콩을 들다'의 이지봉(이범수)은 88올림픽 역도 대표 출신. 금메달 직전 부상당해 은퇴한 후, 나이트클럽 삐끼로 흘러다닌다. 6명의 시골 여중 역기소녀들은 고아거나 뚱보 혹은 왕따다. '국가대표'의 밥(하정우)은 입양아다. 어머니를 찾으러 귀국했다. 강칠구(김지석)는 청각장애 할머니와 정신지체 아우를 돌봐야 한다. 예전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미숙(문소리)과 혜경(김정은)은 가난하고, '말아톤'의 초원이(조승우)는 자폐증 환자다. '반칙왕'의 대호(송강호)는 집에서도 은행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다. '주먹이 운다'나 '챔피언'처럼 헝그리 종목의 대명사인 복싱 소재 영화가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할리우드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은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외롭고 늙은 트레이너 프랭키와 30대에 복서가 되겠다고 나선 여성 매기의 얘기다. 실베스터 스탤론을 일약 톱스타로 만든 '록키'의 록키 발보아도 빈민촌에 살면서 4회전 복서로 근근이 살았다.

그런데 이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살인적인 훈련과정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다. 영화는 초반에 주인공들의 고난과 역경을 그리고, 이어서 피를 토하고 눈물을 쏟는 훈련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성공 여부보다 도전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동메달을 땄다고 그 인생까지 동메달인 것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가치있는 것이며 금메달 인생이다"라는 '킹콩을 들다'의 이지봉 코치의 말이 대표적이다. '우생순'의 마지막 슈팅 장면, '킹콩을 들다'의 바벨을 들어올리는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처리한 것은 이러한 연출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함께 하는 팀워크의 미학

최근 흥행에 성공한 스포츠영화의 공통점이다. 한 명의 빼어난 스타를 조명하지 않는다. 팀워크를 강조한다. '우생순'의 핸드볼은 단체경기이므로 협동정신이 필수적이다. 역도는 개인 기록경기지만, '킹콩을 들다'에서는 코치와 6명의 소녀들이 한 가족처럼 정을 나누며 지낸다. '국가대표'의 스키점프 선수들 역시 처음엔 티격태격하지만, 나중에는 뜨거운 동료애를 갖게 된다. 영화평론가 송효정씨는 "한 명의 영웅을 신화화하는 대신 마이너들의 삶을 조명해 감동을 준다. 협동의 미학을 강조함으로써 영웅이 아닌 소시민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내게 된다"면서 "한 명의 빅스타에 의존하는 스타시스템 대신 여러 배우가 호흡을 맞추는 영화를 선호하는 충무로의 제작환경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바로 내 얘기…공감대의 원천

"스포츠에서는 약자가 잘 하면 응원해 주는 게 당연하다."

'국가대표'에서 방송 해설자가 외치는 말이다. 한국 스포츠영화가 비인기 종목에 주목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힘겨운 삶과 꿈을 향한 눈물겨운 도전은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쉽다. 승마나 요트같은 귀족스포츠보다 권투, 역도, 핸드볼 같은 헝그리 종목이 많은 이유다. 한국인 특유의 한의 정서, 비애의 감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야구, 축구, 미식축구, 농구 등 인기 종목 스포츠영화도 꽤 제작되는 할리우드와 다른 점이다.

영화 속 인물과 동일시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은 "관객들은 우리 사회 소시민들이며, 자신이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영화 주인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시대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관객들은 역기소녀나 스키점프 대표선수들이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인간승리의 휴머니즘이 가슴을 적신다. 재벌 2세의 경영철학서보다 자수성가형 인물인 정주영, 이명박, 김우중의 자서전이 히트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가족애, 우정을 강조하는 것도 공감의 원천이다. 스포츠의 극적인 드라마와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적 요소가 어우러진 결과다.

실화 바탕 사실적 느낌 … 끊임없는 웃음 - 짠한 결말

　▶실화 소재…리얼리티의 강화

스포츠영화는 대개 실화를 소재로 한다. 그래서 허무맹랑하지 않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우생순', '킹콩을 들다', '국가대표'는 물론 할리우드 걸작 '분노의 주먹'이나 '신데렐라맨', '쿨 러닝', '드리머' 등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삶의 현실과 밀착돼 있다.

훈련 과정이나 내용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도 리얼리티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송효정씨는 세태와 연결지어 분석한다. "TV의 리얼리티 프로가 게임의 방식으로 진행돼 인기를 얻듯이 스포츠영화는 과정의 리얼리티가 어필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촬영 기술도 중요한 요소다. '국가대표'는 케이블캠 카메라를 이용해 선수와 같은 속도(시속 100km)로 이동하며 찍었다. 그래서 점프 장면은 진짜 경기를 보는 듯 생생하다. 비주얼이 강화됨으로써 관객의 몰입도가 높아졌다.

▶눈물과 웃음의 조화

'킹콩을 들다'와 '국가대표'가 예전 스포츠영화와 가장 달라진 점은 유머다. 두 영화에는 웃음이 넘쳐난다.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스포츠영화는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가난, 병, 고독 등을 강조함으로써 자칫 비장감을 줄 수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영화가 그랬다. 하지만 두 영화는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한참 웃다가 결말에 가서 짠해지는 전개를 보여준다. 코미디와 휴먼드라마의 결합이다. 진지하고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를 싫어하는 시대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 임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