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의 시네마 업데이트] 日 애니메이션 '썸머워즈'

2006년 저패니메이션 최고의 걸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만들었던 호소다 마모루가 돌아왔다. 그의 신작 '썸머워즈'의 환상적인 완성도를 보고 나니 배가 아파 죽겠다.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는 흥미진진함과 빈틈없는 마무리, 그리고 화려한 영상은 이 땅의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을 또다시 절망시킬 것 같기 때문이다. 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호소다 마모루라는 감독을 차세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로 꼽게 했다면 '썸머워즈'는 저패니메이션이 그로 인해 세대교체에 완전히 성공했음을 증명한다.

얘기는 무척 소소하게 시작한다. 17세 고등학생 겐지가 미모의 선배 나츠키의 요청으로 그녀의 고향에 동행하게 되면서부터다. 겐지는 딱히 내세울 건 없는 평범한 외모지만 수학 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나갈 뻔했던, 나름 천재 소년. 방학 중 'OZ'라는 사이버 가상세계의 말단 서버관리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던 참이다. 그런 그에게 짝사랑하는 선배 나츠키와 시골 마을로의 여행은 웬 행운인가 싶지만 곧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잠깐 한 눈 팔면 길을 잃을 만큼 거대한 저택, 90살 할머니를 정점으로 한 27명 대가족의 떠들썩한 위용. 그리고 그 가족들 앞에서 남자친구인 척 해달라는 나츠키의 요청에 겐지는 기가 팍 죽는다. 정신없이 대가족 틈에 끼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무렵,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 암호화된 문자인데, 싱숭생숭하던 겐지는 그 암호를 밤새 해석해 답 문자를 보내고 잠이 든다. 그런데 그 문자는 다음날 세상의 위기를 초래할 거대한 혼란의 불씨가 된다.

고교생들의 사소한 만남을 결국 일본 애니 특유의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로 부풀려가는 '썸머워즈'는 상상력이라는 도구를 정말 마음껏 활용한다. 잔뜩 폼 잡고 현학적인 대사를 남발하는 대신 일상에서의 황홀한 기적을 만들어낸다. 수학 밖에는 몰랐던 소년이 대가족의 틈에서 용기를 얻고 위기를 해쳐 나가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쥘 만큼 흥미진진하다. 모든 것이 아이디와 패스워드, 아바타로 이루어지는 가상 세계의 편리함과 맹점, 그리고 그것의 붕괴가 초래한 현실세계의 위험을 다루는 방식도 독특하다.

이런 주제를 건드린 애니메이션은 많지만 '썸머워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즐겁고, 가장 쉽고, 가장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이 틀림없다. 장담컨대, 후반부 인류의 운명을 걸고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맞고' 승부는 호소다 마모루와 저패니메이션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자 눈물이 찔끔, 가슴이 저릿할 만큼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