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페이퍼진] 임정식 기자의 시네마 오디세이 '국가대표'
입력 : 2009.08.10 17:08
'바보' 강봉구(이재응)가 하늘을 난다. 새처럼 높이 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살던 봉구가, 가장 높은 위치에 서는 순간이다. 이 비상은 눈물겹다. 꿈의, 자유의 비상이다. 나가노올림픽 스키점프 경기장. 봉구는 처음엔 후보였다. 차라리 구경꾼이었다. 1차시기에서 다리를 다친 형 칠구의 대타로 점프대에 선다. 처음엔 벌벌 떤다. 못하겠다고 운다. 형의 한 마디가 그를 바꾼다. "메달 따야 (내가) 군대 안간다". 맞다. 메달 따서 면제받아야 청각장애 할머니를 모실 수 있다. 그리고 필사의 활강....
이 비상은, 영화 '국가대표'의 상징적 장면이다. 봉구가 어두운 저녁 하늘을 새처럼 나는 동안, 아련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라는 노래다. '폭풍 치는 바다'라는 뜻을 가진 뉴질랜드 마오리족 민요. 관중의 함성도, 중계방송 캐스터의 흥분한 목소리도 사라진 정적의 순간. 가늘고 느린 현의 울림이 스크린을 적신다.
이 노래, 익숙하다. 가슴 속으로 휑한 바람이 불 때, 기필코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할 때, 강태식(최민식)이 휘파람으로 부른 노래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주먹이 운다'(2005)에서 그랬다. 태식은 북경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 출신이다. 하지만 지금은 불우하다. 빚에 쪼들리고, 차압을 당하고, 할 일도 없다. 태식은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다. '인간 샌드백'이 된다. 누구나 1만원만 내면, 그를 샌드백처럼 실컷 때릴 수 있다. 바로 그 때다. 번화가 벤치에 홀로 앉아 붕대를 감으며, 맞을 준비를 하며, 태식은 휘파람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그도 한때는 국가대표였다.
비상하는 '바보' 봉구와 길거리의 '인간 샌드백' 태식. 겉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내면은 다를 바 없다. 어떤 간절함이 강물처럼 흐른다. 봉구는 아웃사이더인 '국가대표'의 인물들 중에서도 아웃사이더다. 가난하고, 정신적으로 좀 모자라고, 신체도 빈약하다. 그의 비상은 이런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태식도 마찬가지다.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나 강태식이야!"라고 힘주어 말하던 자존심 센 사나이. 그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망가져서는 안된다. 일어서야 한다. 간절한 바람이다. 바로 그 순간, '포카레카레 아나'가 흐른다. 휘파람으로 분다.
이 노래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닮은 전설이 있다. 아름다운 로토루아 호수. 아리와 족장의 딸 히네모아와 훼스터 부족의 최고 전사인 두타니카는 연인이다. 그러나 두 부족은 원수지간이다. 히네모아의 아버지가 둘이 만나지 못하도록 카누를 부순다. 그러자 히네모아는 추운 겨울날 호수를 헤엄쳐 건너 연인을 찾아간다. 두타니카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연인을 살려낸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전쟁을 끝낸다.
'포카레카레 아나'의 가사는 애절하다. '로토루아의 호수엔/폭풍이 불고 있지만/그대가 걸어가면 그 바다는/잔잔해질 거예요/ 그대여 내게로/다시 돌아오세요/너무나 그대를/사랑하고 있어요~'. 이 노래는 아버지가 마오리족인 뉴질랜드 출신 소프라노 키리테 카 나와가 불러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는 '연가'라는 제목으로 소개돼 히트했다. MT나 캠핑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기타 반주에 맞춰 '비바람이 치던 바다/잔잔해져 오면~' 하고 손뼉 치며 불렀다.
세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각 인물들이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다는 점이다. 사랑의 간절함,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함, 꿈을 이루려는 간절함이다. 이렇게 전설, 영화, 노래가 하나의 끈으로 묶여 진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국가대표'는 우리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킹콩을 들다'와 유사하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꿈과 도전을 그린다. 스토리는 다소 헐겁고, 이야기 전개도 상투적이다. 그러나 유머와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케이블캠 카메라를 활용한 점프 장면은 압권이다. 점프대를 따라 설치된 와이어에 매달려 선수와 같은 속도(시속 90~100km)로 이동하며 찍었다. 경기 장면은 독일과 미국에서 직접 촬영해 합성했다. 실제 경기를 보는 듯 생생하다. 눈 내리는 화면을 보며 더위를 식힐 수도 있다.
< 기획취재팀>
이 비상은, 영화 '국가대표'의 상징적 장면이다. 봉구가 어두운 저녁 하늘을 새처럼 나는 동안, 아련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라는 노래다. '폭풍 치는 바다'라는 뜻을 가진 뉴질랜드 마오리족 민요. 관중의 함성도, 중계방송 캐스터의 흥분한 목소리도 사라진 정적의 순간. 가늘고 느린 현의 울림이 스크린을 적신다.
이 노래, 익숙하다. 가슴 속으로 휑한 바람이 불 때, 기필코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할 때, 강태식(최민식)이 휘파람으로 부른 노래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주먹이 운다'(2005)에서 그랬다. 태식은 북경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 출신이다. 하지만 지금은 불우하다. 빚에 쪼들리고, 차압을 당하고, 할 일도 없다. 태식은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다. '인간 샌드백'이 된다. 누구나 1만원만 내면, 그를 샌드백처럼 실컷 때릴 수 있다. 바로 그 때다. 번화가 벤치에 홀로 앉아 붕대를 감으며, 맞을 준비를 하며, 태식은 휘파람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그도 한때는 국가대표였다.
비상하는 '바보' 봉구와 길거리의 '인간 샌드백' 태식. 겉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내면은 다를 바 없다. 어떤 간절함이 강물처럼 흐른다. 봉구는 아웃사이더인 '국가대표'의 인물들 중에서도 아웃사이더다. 가난하고, 정신적으로 좀 모자라고, 신체도 빈약하다. 그의 비상은 이런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태식도 마찬가지다.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나 강태식이야!"라고 힘주어 말하던 자존심 센 사나이. 그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망가져서는 안된다. 일어서야 한다. 간절한 바람이다. 바로 그 순간, '포카레카레 아나'가 흐른다. 휘파람으로 분다.
이 노래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닮은 전설이 있다. 아름다운 로토루아 호수. 아리와 족장의 딸 히네모아와 훼스터 부족의 최고 전사인 두타니카는 연인이다. 그러나 두 부족은 원수지간이다. 히네모아의 아버지가 둘이 만나지 못하도록 카누를 부순다. 그러자 히네모아는 추운 겨울날 호수를 헤엄쳐 건너 연인을 찾아간다. 두타니카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연인을 살려낸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전쟁을 끝낸다.
'포카레카레 아나'의 가사는 애절하다. '로토루아의 호수엔/폭풍이 불고 있지만/그대가 걸어가면 그 바다는/잔잔해질 거예요/ 그대여 내게로/다시 돌아오세요/너무나 그대를/사랑하고 있어요~'. 이 노래는 아버지가 마오리족인 뉴질랜드 출신 소프라노 키리테 카 나와가 불러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는 '연가'라는 제목으로 소개돼 히트했다. MT나 캠핑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기타 반주에 맞춰 '비바람이 치던 바다/잔잔해져 오면~' 하고 손뼉 치며 불렀다.
세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각 인물들이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다는 점이다. 사랑의 간절함,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함, 꿈을 이루려는 간절함이다. 이렇게 전설, 영화, 노래가 하나의 끈으로 묶여 진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국가대표'는 우리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킹콩을 들다'와 유사하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꿈과 도전을 그린다. 스토리는 다소 헐겁고, 이야기 전개도 상투적이다. 그러나 유머와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케이블캠 카메라를 활용한 점프 장면은 압권이다. 점프대를 따라 설치된 와이어에 매달려 선수와 같은 속도(시속 90~100km)로 이동하며 찍었다. 경기 장면은 독일과 미국에서 직접 촬영해 합성했다. 실제 경기를 보는 듯 생생하다. 눈 내리는 화면을 보며 더위를 식힐 수도 있다.
<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