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깽깽이' 켜는 집시… 슬픔마저 요란스러워

에밀 쿠스트리차(55) 감독의 영화는 기묘한 불편함을 준다. 그것은 바이올린 대신 '깽깽이'란 단어가 훨씬 더 어울리는 집시음악의 광란도 아니며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의 엉뚱한 등장도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조국 세르비아 국기도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비웃으며 질펀하게 벌어지는 춤판 속에 숨은 마초이즘은 반복될 때마다 불편하다. 13일 개봉하는 그의 2007년 영화 '약속해줘!'는 그런 느낌이 좀 더했다.

외딴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15살 소년 차네(우로스 밀라바노빅)는 어느 날 소를 끌고 도시로 나간다. 할아버지는 차네에게 소를 팔아 성화(聖畵)와 기념품을 사고, 결혼할 처녀를 데려오라고 시킨다. 생전 처음 도시에 나가 어리둥절해하는 차네는 이윽고 어여쁜 처녀 야스나(마리아 페트로뇨빅)를 발견한다. 그러나 야스나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적어도 쿠스트리차의 이 영화에서만큼은 여자 캐릭터들이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느낌이 짙다. 그것이 연출이 아닌 관성에 의한 것이란 생각이 들 때 불쾌감은 더하다. 영화에서 여자들에게 치근덕대는 남자들은 (귀엽게 묘사하려 했지만) 역겹고 저질스럽다. 매춘업자의 횡포를 되갚는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남자들의 시선은 종종 포르노에 가깝다. 이런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쿠스트리차의 장난기와 색감(色感)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역시나 요란한 집시음악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슬픔을 이야기할 때도 '깽깽이'와 북이 퉁탕낑깡거리며 법석을 떤다. 음악에 총소리가 섞이고 춤이 따라오는 것은, 베오그라드 왕국에서 유고슬라비아 연방, 다시 신유고연방을 거쳐 세르비아로, 지난 100년 동안 4가지 국가형태를 겪은 세르비아 국민들의 정서가 담긴 듯하다. "다 찾을 수 있어. 모든 건 제자리에 있지. 사람만 빼면 말이야" 하는 영화 속 대사 역시 집시 민족의 그런 정서적 자괴를 은유한 것으로 들린다.

사과를 가득 채운 야외 욕조 같은 장치는 다른 영화에서 베낄 만한 아이디어다. 대포에서 발사된 인간 탄환이 영화 마지막까지 엉성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하늘을 나는 장면은 '쿠스트리차니까' 킬킬거리게 한다. 작년 쿠스트리차의 밴드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기 더 좋은 영화. 이 밴드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이래로 줄곧 쿠스트리차 영화의 음악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