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밤 고양이

〈제8보〉(113~123)=앞서 달리는 쪽은 변화가 두려워 모험을 피한다. 반면 뒤처진 쪽은 고도의 집중력 속에 죽기 살기로 추격해 온다. 이 같은 대조적 자세는 형세가 손바닥 뒤집듯 반전되는 원동력이 된다. 바둑이건, 다른 어떤 승부건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끝까지 우세를 지켜내는 기술이야말로 우세해지기까지의 능력보다 훨씬 더 윗길이다.

백은 지난 보(譜)에서 화려한 중앙 처리로 주도권을 잡은 뒤 까지 차지했다. 슬슬 승리감이 몸을 휘감아오는 시기다. 흑 113, 115는 자체로도 큰 끝내기이거니와 허리띠를 질끈 조인 수. 무언가를 밤 고양이처럼 노리고 있다. 흑의 음모를 아는지 모르는지 116은 노 타임. 바로 그 순간 117이 떨어졌다. 다음 수를 놓는 데 8분이나 소요된 걸 보면 백은 여기서 분명히 흔들렸다.

118로 참고도 1에 달아나면 6까지 외길인데 다음 A와 B가 맞보기. 고심 끝에 중앙 2점을 포기, 118로 회군했지만 119를 맞으니 판 전체가 휘청한다. 123 시점에서 좌중앙 백은 여전히 미생인 채 형세도 순식간에 다시 접근했다. 아, 승부의 돌발성이여. 신기루처럼 표변하는 그 영화(榮華)와 굴욕의 이중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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