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합동전시회 연 네 자매 화가

최근 서울 관훈동 경인미술관에서 특이한 전시회가 열렸다. 8월 5일부터 11일까지 ‘콰트로(QUATTRO) 2009’라는 이름으로 열린 전시회가 그것이다. 참고로 콰트로는 숫자 4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작가 네 명이 출품한 단체전인 이 전시회의 작가는 모두 친자매 사이다. 미술 분야에서 네 자매가 함께 전시회를 여는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경력을 살펴보니 해외파가 셋, 국내파가 하나다. 맏언니인 김혜영씨가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했고 세 동생은 프랑스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세 자매의 해외 유학은 혜영(40)씨의 대입 낙방이 계기가 됐다. 1991년의 일이다. 부친 김종철(73)씨와 모친 손기자(69)씨는 맏이가 대입에 실패해 재수를 하게 되자 자식들을 외국에서 공부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아이들은 외가쪽의 예술적 소질을 이어받아 그림을 좋아하고 재능이 뛰어났다.

프랑스 유학시절 외로울 틈도 없었죠!

처음에는 둘째 혜진(38)씨와 셋째 현경(36)씨가 같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이때가 1991년 1월 초였다. 넷째 현정(32)씨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5년 후인 1996년에서야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이들 자매도 늘 셋이 다 같이 살았던 것은 아니다. 셋째 현경씨가 도중에 한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현경씨는 1995년 프랑스에서 미대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중앙대 예술대학원을 다니는 것 외에도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 활동, 국립중앙박물관 프로젝트 참가, 예술의전당과 청와대 종합상황실 근무 등 다양한 경력을 쌓은 후 1999년 다시 프랑스로 갔다.

세 자매가 함께 생활하다 보니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다. 처음에 유학을 같이 떠난 둘째와 셋째는 외롭거나 서러울 틈이 없었다. 프랑스 유학이 갑작스레 결정됐기 때문에 제대로 말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현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국에서 프랑스문화원의 어학교육기관인 알리앙스 프랑세즈를 석 달 다녔지만 막상 프랑스로 건너가서 학교를 가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셋째는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베세데(영어로 따지면 ABCD)를 공부하는 수준이었으니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죽기살기로 프랑스어를 배워갔다.

18년간 떨어져 살다보니 情 오히려 남달라

처음에는 언어가 골칫거리였지만 곧 진짜 장애물에 부딪힌다. 셋째 현경씨의 말이다. “한국에서 받은 주입식 교육이 문제가 됐어요. 처음에는 제 그림을 보고 ‘한국에서 교수하다 왔니?’ 하다가 1년 지나면 ‘한국 애들 그림은 다 똑같고 창의력이 없다’고 혹평하더라고요.”

프랑스에서는 어떤 식으로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둘째 혜진씨는 데생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데생 같은 경우 대상을 10초 정도 보고 나서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그리게 하거나 한 발 들고 그리게 하거나 연필 떼지 말고 마티스처럼 면으로 그리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네 자매가 한국과 프랑스에서 미술을 배운 것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맏이 혜영씨는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동생들과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동생들도 “큰언니하고 계속 대화를 나눈 덕분에 동서양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

세 자매가 프랑스에서 공부한 걸 보니 집이 부자였나보다 하고 물었다. 참고로 부친은 한국전력에 다니다가 자녀 유학 비용을 대기 위해 석탄회사로 옮겨 대표이사까지 지내다 퇴직했다. 모친은 간호사 출신이다. 둘째 혜진씨는 이 말에 손사래를 쳤다. “처음 한 5년은 부모님께서 생활비를 대주셔서 편하게 지냈지만 그 후로는 저희가 벌어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해야 했어요.” 넷째 현정씨는 새삼 옛날 일이 떠올랐는지 “1996년에 프랑스 가서 돈 아끼려고 8년간 한국 안 들어왔다”고 밝혔다.

가족이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면 자칫 사이가 벌어지기 쉽다. 18년간 떨어져 살아온 네 자매는 다행히 맏언니 혜영씨가 조율사 역할을 잘해줘서 우애가 굉장히 돈독한 편이다. 그래도 이질감이 아주 없지는 않다. 혜영씨의 말. “동생들이 자기네끼리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소외감 느껴요.” 혜영씨도 조만간 프랑스어를 배울 생각이다. 넷째 현정씨가 8월 초에 서울에서 프랑스인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같이해서 좋은 점? 서로 맘껏 비평할 수 있어

이들 자매에게 이번 전시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이들은 “요즘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을 느끼고 한국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해외파가 적은 편이란다. 이들은 “프랑스로 미술 유학 오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막상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학사관리가 엄격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친자매 사이지만 화풍은 저마다 개성이 넘친다. 그림도 성격의 산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자매 서로가 전하는 성격을 보자. 첫째는 동심이 많고 정이 많다. 둘째는 가장 이성적이고 중재자 역할을 한다. 셋째는 감성이 풍부하고 넷째는 분석적이다.

자매가 같은 분야의 예술을 하면서 좋은 점을 들어달라고 했더니 “서로의 그림을 보고 기탄없이 비평해줄 수 있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큰언니 혜영씨는 “국내에서는 친구·선후배 간에 서로 작품 얘기를 안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넷째 현정씨는 “프랑스는 늘 비평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들 가족에게도 아픈 대목이 물론 있다. 혜영씨 형제는 현정씨 밑에 연년생 남동생 도훈씨(31)가 있어 모두 4녀1남이다. 도훈씨는 예술가인 누나들과 달리 고려대에서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들 남매는 지난 18년간 한 번도 가족사진을 같이 찍어본 적이 없다. 이들 자매가 이번 전시회에 거는 기대와 애착은 예사롭지 않다. 둘째 혜진씨는 “이번 전시회에 넷이라는 명칭과 연도를 넣은 것은 우리 네 자매가 앞으로도 같이 전시회를 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