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선택] 반갑다 정통 갱스터

마이클 만 감독이 범죄자와 그를 쫓는 수사관의 이야기를 찍었다고 하니 자연스레 명작 '히트(1995년)'가 떠올랐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가 명연을 겨룬 이 영화는 액션 스펙터클과 러브 스토리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12일 개봉한 마이클 만 감독의 새 영화 '퍼블릭 에너미'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배우는 조니 뎁과 크리스천 베일로 바뀌었고, 무대는 1930년대 미국이다. 이 영화 역시 사내들의 거친 충돌을 다루면서 멜로 드라마를 삽입했다. 다만 영화의 바탕이 된 은행강도 존 딜린저의 실화 자체가 가진 힘이 약하다. 소품과 의상을 비롯한 영화의 디테일은 놀랍도록 정교하며, 고전(古典)을 고집한 연출은 충직하게 한 땀씩 뜬 수제 카펫처럼 튼튼하고 우직하다. 미국 갱스터 영화 팬들에겐 오랜만의 선물이다.

대공황 시기 은행에 예치된 '부자들의 돈'만 강탈하는 존 딜린저(조니 뎁)에 대해 FBI는 '공공의 적 1호'란 별명을 붙이고 추적한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그를 FBI 수사관 멜빈 퍼비스(크리스천 베일)가 잡아넣지만, 딜린저는 탈옥에 성공해 또 다른 은행을 턴다. 딜린저의 여자 빌리(마리안 코티아르)를 먼저 잡아넣은 FBI는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딜린저를 덮친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바로 '히트'를 떠올릴 것이다. 조니 뎁이 내갈기는 기관총 소리가 '히트' 시가전의 그것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때론 영상보다 사운드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첨단 수사기법이라고 해야 기껏 전화 도청밖에 되지 않던 시절이어서, 은행 강도의 뒤를 쫓는 FBI의 수사는 종종 답답하고 발을 헛디딘다. 그럼에도 2시간20분이나 되는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현란한 볼거리 대신 정통 갱스터 영화의 문법을 고집하는 감독의 연출 덕분이다. 그러므로 화려한 추격전이나 폭파장면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게 좋다(애초 그런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마이클 만 감독은 로맨티스트인 것 같다. 이 영화의 가장 굵은 뼈대는 은행강도와 그의 여자의 러브 스토리로 이뤄져 있다. "사람들은 어디 출신이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느냐야" 같은 존 딜린저의 대사는 꽤 멋있다. 그러나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건 좋은 옷과 빠른 차, 위스키"라면서 한편으론 부자를 증오하는 딜린저는 관객의 공감을 사는 데 실패한다.

이 영화의 의상과 미술은 매우 고급스럽고 훌륭하다. 조니 뎁과 크리스천 베일은 뛰어난 스타일만으로도 여성 팬들을 꽤 현혹할 듯.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멜빈 퍼비스 수사관은 만화 주인공 '딕 트레이시'의 모델이었다.

▶전문가 별점

고전적인 묵직함과 시대와 인간을 뒤섞는 장인의 빛나는 솜씨.

― ★★★★ 이상용·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