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alk 튀네] '10억' 들고 돌아온 박해일

추억이 강렬했다. 미스터리가 깃든 표정이다. 웃는듯 하면서 차갑다. 상대의 마음을 파헤치는 눈빛이다. 적어도 '살인의 추억'과 '괴물', '극락도 살인사건'에서 박해일의 인상은 그랬다. "저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무디고 평범한 사람이에요. 주도면밀하지도 않고요."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디뎠던 배우 박해일. 그가 영화 '10억'을 들고 돌아왔다. '10억'은 여덟 명의 남녀가 상금 10억원을 받기 위해 호주 퍼스에서 열린 생존 게임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박해일은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프리랜서 PD 한기태 역을 맡았다. < 글,사진=권영한 기자 champano@sportschosun.com>

① 호흡 잘 맞는 여배우는?

'질투는 나의 힘' 때 배종옥 선배 도움 많이 받아

지금까지 영화 작업 하면서 자기랑 가장 잘 맞았던 여배우는 누구라고 생각해요.

"배종옥 선배요. '질투는 나의 힘' 때."

의외인데요.

"다른 분들이 안 맞았다는 얘기는 아니고. 연배차가 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쩔 땐 형같은 느낌도 들고. 잘해주셨기도 했지만 저도 정말 잘 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어요. 선배, 후배를 떠나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국화꽃 향기' 때 함께 연기했던 장진영씨가 투병 중이잖아요. 연락 한 적은 있는지.

"예전에 술을 많이 먹고 그 얘기를 전해들은 시점에 문자를 한 번 보낸 적이 있었어요. 힘내시라고. 답장은 없었는데. 전화번호가 바뀌었거나 그랬던 것 같아요. 다행히 최근에 기운을 차리셨다고, 많이 호전 됐다고 들었는데. 작품에서 보는 게 최고죠. 제발 멋진 작품으로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영화한 지 햇수로 9년째네요. 걸어온 길도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봐야 할 시기잖아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위치에 온 것 같아요. 뭔가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하면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앞길이 더 막막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나름 자양분과 재산이라 생각하고 한살 한살 나이 먹는 것도 감안해서 그때 그때 느끼는 걸 작품 속에 잘 담아내고 싶어요."

박해일씨 정도의 배우가 막막하다고 하면 다른 배우들은 어쩌라고요.

"다들 숙제가 있고 헤쳐나가야 할 몫이 있잖아요. 어디에 서있든 누구나 한 세상 산다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② 장진영 위암투병중인데…

빨리 완쾌…멋진 작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호주는 어땠어요.

"해외로케이션이 처음이라서 긴장을 많이 했죠. 테러는 일어나지 않을까. 국제 미아가 되지는 않을까.(웃음)"

호주의 풍광이 영화에 잘 담겼더라고요.

"자연이 주는 경관이 대단했어요. 태어나서 제 두 눈으로 봤던 곳 중에서 가장 넓고 원색적이었고 맑았어요. 공항에 내려서 몇 백㎞를 봉고차에 꾸겨 타고 달렸어요.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거리라고 하더라고요. 서서히 촬영지가 나타났죠. 말 그대로 오지같은 느낌도 있었고. 모든 공간이 초자연적인 느낌이었어요, 인위적이지 않은."

화장실 셔틀버스가 한시간마다 다녔다던데. 그럼 대소변을 버스가 올 때까지 참아야 하나요.

"그랬죠. 그나마 가까운 곳까진 이동화장실 버스가 따라와줬는데 먼 곳으로 가서 촬영할 땐 배차시간을 두고 화장실 버스가 왔어요. 여배우들과 여자 스탭진이 고생을 많이 했죠. 이럴 땐 정말 남자로 태어나길 다행이다 싶었죠."

③ 해외 로케이션은 처음!

호주 오지서 촬영…초자연적인 경관 너무 아름다워

10억에 사람들이 목숨을 건다는 건데 사실 그걸로 강남에서 아파트 하나 사기도 힘들 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졌잖아요.

"그럼 강북스타일로 생각하시면 돼요. 약간 성장영화의 느낌도 있거든요. 수많은 청춘들이 나오는데 앞날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에요. 강남쪽 친구들은 10억 서바이벌 게임에 신청을 안 했겠죠. 사실 또 강남이라고 다 잘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같이 출연한 여배우가 세 명인데 각각의 색깔이 다르죠.

"정말 다 달라요. 캐릭터에 잘 맞게 캐스팅이 참 절묘한 것 같아요. 정유미씨는 순한 양 같다가도 카메라 돌아가면 돌변하죠. 여배우들끼리는 서로 견제하고 그럴 수 있는데, 다들 돈독하게 잘 지냈어요. 워낙 오지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까 촬영이 끝나면 각자 집에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요."

극락도도 마찬가지지만 외부와의 단절된 공간에서 영화가 진행되는데.

"어딜 가도 끝이 나오지 않아요. 나침반이 있어도 찾기 힘든 오지였죠. 처음에 길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도로가 있긴 하지만. 최소한으로 돼 있고. 그래서 공간이 주는 극적 긴장감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서울에서 찍었다면 이런 분위기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