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추풍낙엽(秋風落葉)

〈제11보〉(141~164)=중반 막판까지 팽팽하던 경기가 갑자기 일방적 흐름으로 바뀌는 광경은 꽤 자주 발생한다. 야구 축구 테니스 복싱 격투기 등 지구상 모든 승부에 해당되는 얘기다. 왜 그런 일이 생길까. 집중력 싸움에서 어느 한 쪽이 순간적으로 긴장의 끈을 놓거나, 균형을 이뤄주던 체력이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격차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것이야말로 실력의 차이로, 이 바둑도 여기서부터 그런 장면에 돌입한다. 중앙을 돌보지 않고 딴청을 피웠던 ?Y의 죄과다.

141로 뒤늦게 참고도 1로 늘어봤자 별 낙이 없다. 8까지 백이 꿩도 알도 다 차지한 결과. 하지만 선수(先手)까지 잡은 백은 중앙에서 한바탕 더 손바람을 낸다. 142 이하 146까지, 가을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중앙 흑진이 망가졌다. 반대로 백 집은 천고마비(天高馬肥)를 노래하고 있다. 150 끊음은 모양을 정비하기 위한 수단.

159로 차단, 거대한 좌중앙 백말에게 삶을 강요했지만 곧장 '가'로 따내 사는 건 하수들이나 할 짓이다. 160, 162를 선수 후 내려 빠진 164가 또한 교묘했다. 훗날 '나'에 뛰어 붙이는 끝내기를 보는 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슴 졸이던 검토실 기사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른 바둑을 놓아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