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오지의 산 | 거신령산 | 강원 삼척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지>에는 ‘주저리 주민들이 거신령산을 신산(神山)이라 하여 치제(致祭)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 다음과 같은 기록이 뵌다.

‘본면 전체는 육백산 지맥으로 그 동북방에 위치하며 산악으로 이루어진 면이다. 육백산에서 북동쪽으로 달린 산맥은 본면과 도계읍 미로면의 경계를 이루고 남동쪽으로 다린 산맥은 도계읍, 원덕읍, 근덕면과 경계를 이루었으니 본면은 모두 남북으로 분수령이 되었다. 그 사이에 거신령산(巨神靈山), 장군항, 삿갓봉 등의 높은 산이 있다.’<노곡면지>

하늘이 뇌성으로 울어대며 동이째로 물을 붓는 것 같던 날, 노곡면 어딘가에 있다는 창전산을 찾아 나섰다가 이 거신령산의 존재를 알았다. 빗속을 오가며 하군천리 주민들을 만나 창전산을 암만 물어봐도 고개만 가로젓기에 집으로 가기도 뭐 하여 마을 팔각정에 둘러앉아 점심때 먹을 도시락을 아침나절에 풀어 망중한을 즐길 때 블랙야크 삼척점을 하는 친구 이재학씨가 말했다.

“내가 일전에 이 계곡 끝 둔달리의 마지막 농가에 들러 토종닭백숙을 시켜놓고 고기가 익을 동안 그 집 뒷산을 돌아 봤는데 좋더라고…….”

그로부터 보름 후 이재학씨와 삼척여성산악회 정선자·김순자씨, 태백여성산악회 권영희·이영숙씨는 노곡지서 앞에 진열을 갖춰 다시 모였다. 타령잇재(타평재)에서 발원한 군천을 따라 남서쪽으로 상월산리~하군천리~상군천리를 지나 9km쯤 둔달리 막장 ‘둔둘박이’삼거리에 있는 큼지막한 비석 앞에 차를 멈췄다.

‘옛부터 산비탈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둔둘박이라 부르던 곳. 남쪽에 거신령산, 북쪽에 만리산이 있으며 심곡에서 발원한 둔달천 맑은 물이 흐름. 옥터 일궈 자리잡은 큰 터, 장재터, 등짐지고 쉬어 넘는 정잇재, 타령잇재가 있음. 읍내 가던 오솔길 징검다리에는 조상의 한과 얼이 서려 있음. 나라의 은혜 입어 탄탄대로 열렸으니 떠났던 이웃들아. 이 길 따라 돌아오소. 백태, 청태 잡곡 갈고 황기, 장뇌 약초 심어 부자마을 이룩하세. 은혜 주신 김일동 사장님, 도로개통에 공헌하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 공덕 영원히 기리오리다. 서기 1998년 12월 29일 둔달리 주민 일동.’

자동차 바퀴에 돌을 받쳐 놓고 배낭을 챙겨 왼편 외딴 농가 뒤편 우중충한 산 위로 올라붙는다. 개들이 악다구니로 짖어대고 소들도 같이 울어쌌는다. 정잇재(전의치)로 가는 옛길 들머리는 우사가 막아, 한참을 돌아 올라선 후 우묵한 흔적이 남아 있는 옛길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의 내왕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소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앞선 사람은 거미줄과 나뭇가지를 걷으며 비스듬한 산허리를 타고 간다. 소나무보다 키가 작은 전봇대가 ‘132’명찰을 달고 섰다. 물 많고 계곡 수려한 산넘어 주지리마을로 이어진 듯하다. 133~134~135~136……번 전봇대가 앞장서 간다. 울울창창 하늘을 가린 소나무 아래에는 철쭉, 싸리나무, 쇠물푸레나무, 신갈나무들이 자리다툼을 했다.

어두침침한 숲 사면에 하얀 것이 껌종이를 버린 것처럼 숨어 있다. 매화노루발풀이다.

집 마당에서 아침에 땄다며 김순자씨가 살구를 꺼내 놓는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한입에 문다. 새콤달콤한 싱그러운 향이 입안에 가득 한쪽 눈이 사르르 감긴다.

길은 서서히 높이를 올리며 구불구불 산허리를 감는다. 휴식시간 빼고 1시간쯤 걸려 거신령산 멱을 감아도는 임도에 올라서니 젖무덤과 흡사한 ‘싸리덤봉우리’가 코앞에 솟았고, 깊숙한 둔달리계곡 건너편엔 801.8m봉이 뵌다. 혹시 비문에 써 있던 만리산은 아닌지.

>> 산행 길잡이

둔둘박이~(1시간)~정잇재~(45분)~정상~(30분)~안부~(1시간)~둔달리
상군천 버스정류장에서 둔둘박이까지 걸으면 30분 정도 더 걸린다.

>> 교통

삼척버스터미널(033-572-2085)에서 노선 32번 버스를 이용한다. 삼척~미로~천기리~고자리~노곡면사무~둔달리로 하루 4회 왕복운행하며 요금은 1,100원.

삼척 →둔달리(06:00, 07:40, 14:30, 18:00)
둔달리 →삼척(07:00, 08:40, 15:10, 19:00)

>> 숙식(지역번호 033)

노곡면사무소 부근에 노곡슈퍼(572-3711), 월송식당(572-0255)이 있으며 숙식은 김원근 이장(010-2985-7984)에게 문의하면 된다. 한가네식당(572-7909), 하군천리 김두수 이장(572-7514, 011-9919-7513). 둔달리 거신령산 아래 이용구씨(572-4880)에게 음식주문도 가능하다.

>> 볼거리

가까운 거리에 동해바다가 있다. 삼척해수욕장, 신맹방해수욕장, 맹방해수욕장, 덕산해수욕장, 부남해수욕장, 궁촌해수욕장 등이 있고 궁촌리 공양왕릉을 들러본 후 계곡의 물놀이는 노곡면 하마읍리, 중마읍리, 상마읍리가 좋다.


/ 글·사진 김부래 태백 한마음산악회 고문

거신령산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 정상 서쪽 노송과 돌탑이 있는 임도 삼거리다. 여기를 지형도에는 전의치(前蟻峙)라 했고 둔달리의 둔둘박이 비문에는 정잇재라 쓰여 있었다. 남쪽 아래로는 물놀이하기에 좋은 주지리의 중촌·상촌·수터마을이 보이고 그 위로 두리봉(일명 광덕산 1072.3m), 곧장 8km쯤의 시야에 육백산(1244m)·응봉산(1267.3m)이 수많은 산봉들을 거느렸다. 그리고는 올라왔던 북북동 방향 임도 절개지 위로 거신령산 정상이 뚜렷하게 뵌다.

붉은 흙이 흘러내리고 돌들이 튀어 나온 절개지를 올라 소나무가 빼곡한 마루금을 따른다. 오지산행에 이 정도 길이라면 누워서 떡먹기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옮긴다. 작은 공터를 지난 후부터는 능선이 물구나무를 서기 시작했다. 숲에는 냄새가 독특한 백선이 열매를 맺고 잎과 줄기가 붉은색을 띤 산작약도 있다. 그동안 강원도 오지를 쏘다녀 본 결과 낙동정맥을 중심으로 북부지방 서쪽은 작약이 흰색 꽃, 동쪽은 붉은색 꽃이 피는 개체가 많았다.

석회암 칼등능선으로 소사나무, 댕강나무 속 식물들이 버티고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오를수록 바위가 나타난다. 1m 앞뒤도 볼 수가 없다. 발아래 바위 틈에는 청닭의난초, 참작약, 산작약 등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도 길을 트느라 인사도 못하고 허겁지겁 바위와 바위 사이로 올라서니 지형도에도 이름이 없는 거신령산 정상이다. 광대싸리나무, 물푸레나무, 신갈나무들에 둘러싸인 10×10cm 크기의 네모난 삼각점이 있다.
하산은 북북동 능선으로 한다. 나무들 때문에 능선이 보이질 않는다. 약 100m쯤 내려선 평평한 신갈나무 숲에서 중식을 풀고는 훠이훠이 능선을 따라간다. 돌리네 지형이 나타나더니 흉고 둘레 238cm 되는 금강소나무 15그루가 줄을 서 있다. 모두 끌어안고 나무의 기를 받아본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속삭인다.

여기서 왼편으로 하산할까 망설이다가 약 30분쯤 능선을 따라 더 간다. 길은 부드럽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하늘도 보이지 않는 숲이다. 안부를 만나 이쯤에서 주능선을 버리고 왼편으로 30여 분 내려서니 처음 만났던 임도다. 서쪽으로 임도를 따라가면 20분 거리에 정잇재(전의치)가 되겠다. 임도를 곧장 건너 내려서자 옛길을 만났다.

밀양 박씨, 김해 김씨 묘를 지나 20분쯤에 산사태지역을 미끄럼 타듯 내려서 둔달천을 건너니 포장도로가 나오는 둔달리다. 마을 아낙들이 더덕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저기 저 산 이름이 뭡니까?”

“거신령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