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독일 이스니에서 전지훈련 중인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김흥수 코치(39)는 7일 본지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영화 국가대표가 개봉된 이후 대표선수들이 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최흥철(28), 김현기(27), 강칠구(25), 최용직(27) 등 스키점프 대표선수들의 미니홈피에 들어와 "당신들이 이룬 업적을 치하한다. 앞으로 열심히 응원하겠다"는 등의 격려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는 것.
김 코치는 "숙소에서 영화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 본다. 반응도 좋고 스키점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진 것 같아 뿌듯하다"며 자신들을 소재로 하고 대역으로 직접 참여해 제작된 영화에 대해 매우 흡족해 했다.
김 코치가 김용화 감독으로부터 '국가대표' 영화 제작을 제의받은 것은 지난 2007년 7월쯤이다. 그는 "그 전에도 몇 차례 영화사에서 스키점프 대표팀에 관련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무산됐다. 김용화 감독으로부터 제안을 받고서도 '과연 될까' 반신반의하면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 일단 비인기종목을 알릴 수 있다는 기회라고 판단해 영화를 제작한다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당시를 뒤돌아 봤다.
김 코치는 영화제작에 대한 김용화 감독의 확실한 '의지'를 읽고 난 이후 3개월 간 김 감독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자신들의 스토리를 들려줬다.
시나리오 작업이 완성된 뒤 2008년 봄부터 3개월 간 하정우 등 배우들에게 스키점프도 가르쳤다.
"대표팀은 무주에서 훈련을 했고 영화도 무주 일원에서 제작돼 훈련을 하는 틈틈이 배우들을 만나 스키점프의 이론도 강의하고 실습도 했다. 최대한 선수답게 만들자며 대표선수들의 훈련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김 코치는 "러닝과 장비조작 방법 등 배우들이 훈련을 소화하기가 쉽지않았을 텐데 열의가 대단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주장으로 나오는 하정우의 리더쉽이 좋았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하정우씨는 운동신경이 발달해 있었다. 농구와 축구 등 구기종목은 다 잘했다. 스키점프에 관련된 동작도 금방 따라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안전을 위해 스타트지점에서의 활강과 착지 이후 결승선까지 타고 내려가는 동작만 연기했다. 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실제 점프 동작은 스키점프 대표선수들이 대역을 맡았다. 김 코치는 하정우의 점프 때 대역으로 나섰다.
그는 "배우들이 훈련을 할 때는 아무래도 서투른 면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니 그렇게 리얼하게 연기를 잘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느냐'고 묻자 "우리를 홍보하는 영화인 만큼 출연료 없이 영화제작을 도와줬다"고 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된 후 제작사인 KM컬쳐의 주선으로 현대카드가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을 위한 기부 프로모션을 진행해 1600여만원의 성금을 마련했다. 현대카드는 대표팀이 오는 25일 귀국하면 이 성금을 전달할 계획. 김 코치는 현대카드 측과 협의해 이미 소속팀이 없는 강칠구와 최용직에게 각각 800만원씩 배분하기로 했다. 최흥철과 김현기는 하이원 소속으로 일정액의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강칠구와 최용직은 소속팀이 없어 '실업자'나 다름없다. 스키협회로부터 연간 360만원 정도의 훈련비만 받고 있는 상태. 스키점프 대표팀의 열악한 현 주소를 대변하는 대목이다.
현재 국내 스키점프의 등록선수는 11명에 불과하다. 그 중 4명이 국가대표에 소속돼 훈련하고 있다. 이처럼 선수층이 엷지만 스키점프 대표팀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히고 있다.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은 악조건 속에서도 고군분투, 2003년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을 비롯해 2003년 동계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인전과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김흥수 코치는 "내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태극마크가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내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