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페이퍼진] 임정식 기자의 시네마 오디세이 '10억'
입력 : 2009.08.17 16:38
10억. 서민들이 팔자를 고칠 수도 있는 거액이다. 이 10억을 차지하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쇼가 펼쳐진다. 미화 100만 달러가 특수제작된 은색 가방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돈을 직접 확인한 게임 참가자들의 눈에 긴장감이 감돈다. 참가자는 모두 8명이다. 인터넷 방송의 추첨에 뽑힌 인물들이다. 장소는 육지 속의 무인도인 호주 '퍼스(Perth).' 사막과 밀림, 강, 바다가 에워싸고 있는 곳이다.
게임의 룰은 엄혹하다. 각 라운드마다 탈락자가 생기고, 그 탈락자는 죽는다는 규칙이다. 주최자인 인터넷 방송 장 PD(박휘순)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1라운드가 끝나자마자 전날까지 같이 생활했던 한 명의 시체를 발견한다. 모두 혼비백산하고, 일이 단단히 꼬였음을 알아챈다. 장 PD에게 항의하다가 또 한 명이 희생된다. 장 PD는 매일 인터넷으로 이 게임쇼를 생중계한다.
이쯤 되면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기대한다. 뭔가 복선이 깔려 있을 것이다. 치밀한 두뇌게임이 펼쳐지고, 마지막에 대단한 반전이 있을 것이다. 홍보 포스터에도 '스릴러'라고 돼 있지 않은가. 자, 죽음의 경쟁이 시작된다.
'10억'(감독 조민호)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케이블TV나 공중파 짝짓기 프로, 인기 최고인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예능프로에서 숱하게 우려먹은 방식이다. '10억'은 그 형식의 익숙함을 대중성 확보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 그 의도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미지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의도보다는 완성도가 문제지만.
여기서 지난해 아카데미상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감독 대니 보일)가 떠오른다. '슬럼독...'은 퀴즈쇼를 기본 형식으로 한다. 인도 뭄바이 빈민촌의 18세 소년 자말이 TV의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문제를 맞히는 과정이 중심이다. '10억'은 서바이벌 게임쇼다. 일정액의 상금을 내걸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참가자들이 임무를 완수하면 상금을 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하나씩 성취해 나가야 한다. '10억'의 게임쇼 참가자들은 장 PD가 제출한 과제(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 깃발 차지하기, 화살 찾아오기 등)를 수행해야 하고, '슬럼독...'의 자말은 퀴즈를 풀어야 한다.
상금 액수는 다르다. 하지만 100만 달러든 6억원이든, 한국과 인도에서 그 돈이 갖는 상징성은 동일하다. '슬럼독...'의 자말이든, '10억'의 평범한 샐러리맨이나 고시생이든, 평생 만져보기 힘든 돈이다. 꽉 막힌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당연히 난관이 뒤따른다. 자말은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사기죄로 체포되고, '10억'의 인물들은 호주의 원시 자연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 임무 수행 방법에 영화의 재미가 있다. 그러나 '10억'은 단선적이다. 각 라운드는, 과제 수행과 장 PD와의 투쟁 과정은, 달력 속의 숫자처럼 한 줄로 나열돼 있을 뿐이다. 개인이나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다.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슬럼독...'은 한 소년의 꿈과 사랑, 인도 사회의 모순,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 등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영화까지 그렇게 다층적이고 심각할 이유는 없다. 무거움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10억'의 발상은 흥미롭다. 참가자들과 장 PD, 참가자들끼리의 치밀한 심리전만 있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하지만 허전하다. 느닷없는 로맨스와 배신, 우연의 남발은 맥을 끊어놓는다. 무엇보다 '전지전능한' 장 PD의 존재는 부담스럽다. 그는 어떻게 '사연이 있는' 8명을 꼭 집어 게임쇼에 초대하고, 참가자들의 행동 반경을 족집게처럼 알고, 필요한 곳마다 카메라를 설치했을까. '10억'은 한 사람의 복수극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비밀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 전에 호주의 광활한 대지 위에서 너무 힘을 빼버렸다. 마지막 생존자 유진(신민아)을 비롯한 인물들은 사막과 정글과 강을 헤매다닌다. 장르가 스릴러인지 어드벤처 영화인지조차 모호하다. 한 가지에 승부를 거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아쉽다.
< 기획취재팀>
게임의 룰은 엄혹하다. 각 라운드마다 탈락자가 생기고, 그 탈락자는 죽는다는 규칙이다. 주최자인 인터넷 방송 장 PD(박휘순)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1라운드가 끝나자마자 전날까지 같이 생활했던 한 명의 시체를 발견한다. 모두 혼비백산하고, 일이 단단히 꼬였음을 알아챈다. 장 PD에게 항의하다가 또 한 명이 희생된다. 장 PD는 매일 인터넷으로 이 게임쇼를 생중계한다.
이쯤 되면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기대한다. 뭔가 복선이 깔려 있을 것이다. 치밀한 두뇌게임이 펼쳐지고, 마지막에 대단한 반전이 있을 것이다. 홍보 포스터에도 '스릴러'라고 돼 있지 않은가. 자, 죽음의 경쟁이 시작된다.
'10억'(감독 조민호)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케이블TV나 공중파 짝짓기 프로, 인기 최고인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예능프로에서 숱하게 우려먹은 방식이다. '10억'은 그 형식의 익숙함을 대중성 확보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 그 의도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미지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의도보다는 완성도가 문제지만.
여기서 지난해 아카데미상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감독 대니 보일)가 떠오른다. '슬럼독...'은 퀴즈쇼를 기본 형식으로 한다. 인도 뭄바이 빈민촌의 18세 소년 자말이 TV의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문제를 맞히는 과정이 중심이다. '10억'은 서바이벌 게임쇼다. 일정액의 상금을 내걸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참가자들이 임무를 완수하면 상금을 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하나씩 성취해 나가야 한다. '10억'의 게임쇼 참가자들은 장 PD가 제출한 과제(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 깃발 차지하기, 화살 찾아오기 등)를 수행해야 하고, '슬럼독...'의 자말은 퀴즈를 풀어야 한다.
상금 액수는 다르다. 하지만 100만 달러든 6억원이든, 한국과 인도에서 그 돈이 갖는 상징성은 동일하다. '슬럼독...'의 자말이든, '10억'의 평범한 샐러리맨이나 고시생이든, 평생 만져보기 힘든 돈이다. 꽉 막힌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당연히 난관이 뒤따른다. 자말은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사기죄로 체포되고, '10억'의 인물들은 호주의 원시 자연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 임무 수행 방법에 영화의 재미가 있다. 그러나 '10억'은 단선적이다. 각 라운드는, 과제 수행과 장 PD와의 투쟁 과정은, 달력 속의 숫자처럼 한 줄로 나열돼 있을 뿐이다. 개인이나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다.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슬럼독...'은 한 소년의 꿈과 사랑, 인도 사회의 모순,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 등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영화까지 그렇게 다층적이고 심각할 이유는 없다. 무거움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10억'의 발상은 흥미롭다. 참가자들과 장 PD, 참가자들끼리의 치밀한 심리전만 있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하지만 허전하다. 느닷없는 로맨스와 배신, 우연의 남발은 맥을 끊어놓는다. 무엇보다 '전지전능한' 장 PD의 존재는 부담스럽다. 그는 어떻게 '사연이 있는' 8명을 꼭 집어 게임쇼에 초대하고, 참가자들의 행동 반경을 족집게처럼 알고, 필요한 곳마다 카메라를 설치했을까. '10억'은 한 사람의 복수극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비밀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 전에 호주의 광활한 대지 위에서 너무 힘을 빼버렸다. 마지막 생존자 유진(신민아)을 비롯한 인물들은 사막과 정글과 강을 헤매다닌다. 장르가 스릴러인지 어드벤처 영화인지조차 모호하다. 한 가지에 승부를 거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아쉽다.
<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