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난타전(亂打戰) 출발

〈제1보〉(1~11)=24년의 길지 않은 삶 동안 최철한만큼 많은 굴곡을 겪은 기사도 드물 것이다. 기록적인 만 12세(역대 4위) 입단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18세 때 천원에 오른 뒤, 이듬해엔 당대 최고기사 이창호로부터 국수 기성을 연거푸 빼앗았다. 그러나 공인받던 '차기 1인자'는 2005년 잉씨배 결승전 패배 이후 3년여 동안 끝없는 나락을 헤매야 했다. 그리곤 올해 잉씨배 우승으로 또 한번 거짓말 같은 반전을 보여줬다. 마치 정정(政情) 불안한 후진국서 망명과 귀환을 거듭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돌 선택권을 갖게 된 최철한, 뜻밖에도 백을 차지한다. 흑백은 기풍이나 전략에 의해 고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간혹 연령을 의식해 선택하기도 한다. 6살이나 아래인 외국 후배에게 흑으로 두기는 싫었을지 모른다. 8로 한 칸 더 벌린 점도 최근 들어 대유행 중인 수. 소목 대신 화점에 먼저 걸쳐간 9에 5분이나 투입했다.

11은 갈라치기인지 되협공인지 아리송한 수. 최철한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장고에 빠져든다. 일감(一感)은 '가'의 씌움인데, 그러면 흑은 참고도 5까지 처리 후 6으로 끼워올 가능성이 높다. 그게 싫다면 '나'로 굳힐 수도 있다. 백은 둘 중 어디를 선택했을까. 최근 보기 드물게 화끈했던 난타전은 이렇게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