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탄생·왕의 귀환…그래서 바둑은 즐겁다

김지석(20)이 지난주 벌어진 제5회 물가정보배 결승서 이창호를 2대0으로 완파하고 타이틀 홀더 대열에 처음 합류했다. 24일 현재 48승8패로 다승·승률·연승 3개 부문 모두 경쟁자들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1위를 질주 중이다. 규정에 따라 六단으로 승단한 김지석을 만났다.

―마침내 첫 타이틀을 거머쥔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어린 시절 6년여 동안 매달렸던 연구생 시절이 먼저 떠올랐다. 너무 힘들어 바둑을 떠날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꿈만 같다."

―요즘 기세가 공포스럽다. 갑자기 잘 쳐내는 타자의 눈엔 공이 수박만 해 보인다고 한다. 펄펄 나는 비결이 뭘까.

"과거엔 초반에 실수하면 서둘다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불리해도 길게 보고 참을성 있게 두다 보니 기회가 오더라. 불리한 바둑을 많이 뒤집었다."

―12년 만의 기록 3관왕이 탄생할지 온 바둑계가 주시하고 있다.

"3관왕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다. 기록보다 타이틀을 더 많이 따고 싶다. 그래도 셋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다승이 가장 욕심난다."

―국제대회에선 지금까지 출전은 꾸준히 하면서도 몇 발자국 못 가더라. 이유가 뭘까.

"처음 대면하는 상대를 좀 낯설어하는 경향이 있다. 많이 졌어도 자주 보는 상대와 마주 앉으면 자신감이 솟는다. 앞으론 좀 나아질 것이다."

―초·중·종반으로 나눠 자신의 능력을 자평한다면? 상당히 전투적인 기풍인 것 같다.

"중반전이 그나마 가장 나은 것 같다. 초-종반은 비슷…아니, 종반이 더 자신 없다. 싸우는 게 집 짓는 쪽보다 편하다. 그래서인지 세돌이 형과의 대국이 가장 재미있다."

―동갑내기 강동윤을 의식하는지.

"동윤이는 모든 면에서 균형이 잡힌 강자다. 어린 시절 언젠가부터 치고 나가더니 계속 내 앞을 달렸다. 하지만 앞으론 상대가 누구건 내 바둑을 둘 것이다. 동윤이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내년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싶어한다고 들었다. 군 복무 문제 때문인가?

"신체 한 곳이 안 좋아 군은 면제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멋져 보여서…. 그리고 세계대회도 꼭 정복해보고 싶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그저 종종 넘어졌다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달릴 뿐이다. 56세 서봉수가 지난주 농심배 예선서 보여준 맹활약이 화제다. 태극마크 눈앞에서 좌절로 끝나긴 했지만 지난날 그의 '진로배 9연승'을 떠올린 팬들의 성원은 폭발적이었다. 전화로 연결된 서봉수는 특유의 '열정'과 '신념', '독설'을 섞어 근황을 전했다.

―농심배에서 청년 최고수급들을 연파했다. 원익배에선 본선까지 오르는 등 솜씨가 여전하다.

"내게 바둑은 이제 취미생활이다. 무엇보다 체력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다만 취미를 철저히 즐기고 싶다는 생각은 강하다."

―언젠가 당신이 '바둑 실력은 나이가 들어도 향상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없다. 남들이 나보다 더 많이 늘어 승률이 떨어질 뿐이다. 나는 현재의 내가 전성기 때의 서봉수보다 더 강하다고 믿는다."

―아직도 공부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인터넷을 열면 언제나 1류 프로들의 기보가 수십개쯤 뜬다. 최고의 교재들이다. 또 타이틀 예선전이 열리는 날엔 내 대국이 없어도 관전하러 나간다. 영화감상 뺨치게 재미도 있고 많은 걸 깨닫는다. 이러니 취미생활 아닌가. 하하."

―2년째 바둑리그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밤늦게까지 현장을 지켜야 하는 등 꽤 피곤한 자리던데….

"아들뻘 기사들과 어울려 검토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 하지만 쉬는 선수 1명을 지명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크다. 체력단련? 가끔 골프를 친다. '물 보기' 수준이다."

―평생을 겨뤘던 동갑 라이벌 조훈현과 시니어연승전 최종국서 만나더라.

"단체전이므로 동료들 때문에라도 이겨야 한다. 부담감이 크다. 조 九단은 지난날 나보다 훨씬 강했다. 하지만 나는 워낙 약해 많이 늘 수 있었고 그는 반대로 향상할 여지가 적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5대5 승부 아닐까?"

―둘의 관계가 아직도 서먹서먹해 보인다.

"나는 언제건 열려 있다. 복기(復棋)를 해 주면 하수 입장에서 고맙게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