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방울방울 가슴을 뚫는 자매의 눈물

27일 개봉할 영화 '나무 없는 산'은 한국영화가 걸어가야 할 길 가운데 하나를 또렷하게 가리키는, 빼어난 수작(秀作)이다. 무명 감독이 무명 배우들과 함께 찍은 이 영화는 한국의 구릉(丘陵)을 닮았다. 완만한 경사를 느리고 세심하게 올라 정점에 도달하는 이 영화는 언덕의 정상에서 또 차분하게 내려온다. 이것은 난(蘭)의 곡선을 치는 붓끝이며, 허공에서 내려오는 승무(僧舞)의 손가락이다. 마지막 장면이 먹 스크린으로 바뀔 때, 방울방울 듣던 낙숫물은 끝내 관객 가슴에 구멍을 낸다.

진(김희연)과 빈(김성희)은 각각 일곱살과 다섯살 자매. 아빠는 어디 있는지 모르고 엄마와 셋이 산다. 엄마는 어느 날 서울의 좁은 아파트를 떠나 시골 고모 집에 자매를 맡기고 아빠를 찾아 나선다. "돼지저금통이 가득 차면 돌아온다"는 엄마의 약속을 믿는 자매는 고모 심부름을 하고 받은 삯을 차곡차곡 저금통에 넣는다. 엄마를 빨리 보고픈 마음에 메뚜기를 구워 팔기도 하고 동전을 더 많이 넣으려고 10원짜리로 바꾸기도 한다. 그래도 엄마는 오지 않고 고모는 아이들을 할아버지 농가에 또 맡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큐멘터리가 아니길 빌었다. 물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이 영화는 현실적이다.

영화에 남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빠는 없는 존재이고 할아버지는 늘 멀리 있다. 아이들, 엄마, 고모, 할머니 모두 여자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주된 이미지들은 남자들이 내팽개친 곳에 남은 여자들의 허기와 피곤이다. 이혼한 엄마를 따라 어려서 할아버지 농가에 살다가 미국에 이민 간 김소영(41) 감독은 자신의 유년에 음각(陰刻)된 고단함을 매개로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배우는 진정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나는 것일까. 진과 빈 두 역할을 맡은 아이들의 연기가 형언키 어려울 만큼 놀랍다. 촬영 당시인 2007년 각각 여섯살과 다섯살인 두 아이는 대사와 눈빛, 침묵하는 모습까지 대단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 공(功)은 아이들과 대화하며 영화를 찍은 감독과 나눠야 합당할 터다.

아이들의 산(가족)에는 나무(부모) 한 그루 없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희망의 싹을 뿌리며 성큼 자란다. 고구마며 칼국수밖에 줄 게 없는 할머니에게서 아이들은 희망을 찾아낸다. 엔딩 크레딧 말미에 '김옥난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글귀가 나온다. 김소영 감독의 할머니다.

아빠는 물론 엄마도 끝내 돌아오지 않지만 영화는 관객들 마음에서 구름을 걷어내며 끝난다. 두 꼬마가 번갈아 노래하며 산길을 걷는 마지막 장면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호주 아들레이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베를린영화제 에큐메니컬상 등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이미 초청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