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의 시네마 업데이트] '블랙', 9세여아 장애극복 감동

처음엔 의아했다. 삼중고의 대명사 헬렌 켈러와 그녀의 선생님 설리반의 이야기를 인도라는 배경 속에 가져온 영화 '블랙'이 과연 감동적일까 싶어서였다. 요즘 신세대들은 헬렌 켈러 얘기를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익숙한 얘기 아닐까? 2005년 시사지 '타임'은 왜 이 영화를 '최고의 영화' 5위에 꼽았을까? 약간 시큰둥한 마음으로 '블랙'을 보게 됐다.

주인공은 2살 때 갑자기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된 이후 짐승처럼 자라온 9살 소녀 미셸. 이 딸에게 필요한 건 교사가 아니라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던 아버지의 말처럼 미셸을 구원한 마법 같은 존재가 사하이 선생님이다. 부모도 포기했지만 결코 포기를 몰랐던 사하이는 엄청난 에너지와 집요한 노력으로 미셸에게 수화와 언어 체계를 익히고 세상과 소통하게 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괴력의 영화다. 화려한 노래와 춤 범벅이던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와는 전혀 다른 '블랙'은 초반부터 상당한 감동을 선사한다. 손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먹고 물건을 던지고 괴성을 내지르는 어린 미셸과 사하이의 첫 대면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사하이와 온 몸으로 씨름한 미셸이 난생 처음 스푼을 들고 밥을 먹는 장면, 마침내 전율을 일으키며 첫 단어 '워터'를 깨닫는 장면은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기적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다. 배우들의 열연 사이로 스타일리시한 화면을 채워 넣은 연출도 감동을 흩트리지 않으면서 세련되고 신선하다.

그런데 '블랙'은 미셸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사하이의 이야기다. 헬렌 켈러가 언어를 익힌 후 설리반 선생의 이야기는 잘 기억되지 않지만 사하이는 숙녀로 성장한 미셸이 대학에 진학해서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 강의 내용을 수화로 모두 옮겨주며 늘 함께 있는 스승 사하이에게 미셸은 어쩔 수 없이 남녀 사이의 연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즈음 사하이는 기억을 잃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블랙'은 그런 현실적인 부분들을 외면하지 않고, 단순한 인간승리 이면의 것들을 바라본다. 자신의 병과 미셸의 감정을 깨닫고 조용히 그녀 곁을 떠난 사하이, 사하이가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빛을 찾아야 했던 미셸이 보여주는 기적의 드라마는 정말 흥건한 눈물을 부른다. 그 눈물의 중심엔 배우들의 대단한 연기가 있다. 사하이 역의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타브 밧찬과, 어린 미셸과 성인 미셸을 연기한 두 여배우의 강렬한 연기는 신파를 벗어나 보는 이의 마음을 폭풍처럼 뒤흔든다. 어느 정도냐고? 눈물을 참으려고 아무리 버텨 봐야 결코 소용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