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에서 온 그들, 불가사의한 매력

지난 1일 폐막한 서울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체외수정(원제 Zift)'은 불가리아 영화다. 한국에서 불가리아 영화가 상영된 것은 처음이었다. 옛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시절의 불가리아 사회를 그린 이 흑백영화는 강렬한 스토리와 누아르적 구성으로 영화제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 덕분에 서울에 온 감독 야보르 가르데프(37)와 주연배우 자카리 바하로프(29)는 한국 방문도 처음이었다. 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난 이들은 "이태원에 불가리아 식당이 있어서 놀랐고, 불가리아 사람이 주인이어서 반가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불가리아에서 연극 연출가와 연극배우로 만난 사이. '리어왕'을 비롯한 두 작품을 함께 했다. 가르데프 감독은 이 작품이 첫 영화 데뷔작, 배우 바하로프는 불가리아에서 찍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조연을 맡은 적은 있으나 주연은 처음이라고 했다. 바하로프는 "피터 위어 감독의 신작 '더 웨이 백(The Way Back)'을 최근에 찍었다"며 "이전에는 주로 할리우드 B급 영화에 4~5편 출연했다"고 말했다. 잘 알려진 영화냐는 질문에 근육질의 이 남자는 약간 쑥스러워하며 "돌프 룬드그렌과 장 클로드 반담이 나오는 그런 영화들"이라며 "이를테면 '뉴 유니버설 솔저' 같은 영화에 출연했었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영화 연출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작인 블라디슬라프 토도로프의 2006년 소설 '지프트'를 읽고 영화를 하게 됐죠. 소설의 누아르적 스타일과 새로운 언어들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블라디슬라프 토도로프는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교수이며 불가리아 출신 소설가다. 그가 영화의 시나리오도 썼다고 한다.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이유가 궁금했다. "공산주의 시절의 체제선전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흑백 영화는 매우 날카로운 이미지를 주지요. 누아르 장르에 잘 어울리는 형식입니다. 영화에는 각각 다른 세 가지 종류 필름을 써서 현재와 회상 장면, 주인공이 꾸는 악몽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다른 느낌을 받도록 한 것이죠." 감독의 설명이다.

이 영화는 작년 6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돼 감독상을 받으며 호평받았다. 이후 불가리아에서 개봉했을 때 8주간 관객 3만7000명을 동원했다. 이 흥행기록은 불가리아에서 20년 만에 경신된 것이라고 한다. "극장 상영이 끝난 뒤 인터넷에 영화가 유출됐어요. 사흘간 4만2000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습니다. 불법 다운로드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기록적인 숫자여서 사실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 영화는 세계 46개 영화제에 초청됐다. 지난달 열린 불가리아 영화제에서는 작품상·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감독상을 많이 받았는데 정작 불가리아에서는 감독상을 안 주더군요." 가르데프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문화권에서 제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증거"라며 기뻐했다.

배우 바하로프에게 수상 소감을 물었다. "남우주연상은 불가리아 밖에서 처음 받은 것"이라며 "자랑스럽고, 자신감을 갖게 된 건 물론 책임감까지 느끼게 됐다"고 했다.

영화 원제 '지프트'는 아스팔트 포장이나 지붕 마감재로 쓰이는 타르를 뜻하는 아랍어로, 1950년대 불가리아에서는 젊은이들이 이것을 뭉쳐 껌처럼 씹었다고 한다. 실제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이것을 작은 공처럼 말아서 갖고 있다가 수시로 씹는다. "껌이 없던 시절에 불가리아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이 됐던 것이죠. 70년대 초반까지 그걸 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에 해롭고 맛도 이상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젊은이들은 이상한 유행을 갖고 있잖아요." 가르데프 감독의 말이다.

불가리아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80% 이상이 할리우드 영화라고 한다. 불가리아 영화는 한 해 7~8편에 불과하다. 가르데프 감독은 "한국에선 한국영화 점유율이 50%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며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 두 사람은 2일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