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스타 매거진 : 설경구
입력 : 2009.09.07 11:22
▶타오르는 불이 물을 품다
설경구는 불의 배우다. 불꽃처럼 뜨겁고, 불꽃처럼 타오른다. 설경구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박하사탕'(00)에서부터 그랬다. 심장이 터져나갈 듯, 온 생의 질곡을 떨쳐내려는듯 혼신의 힘을 다해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라스트 신이 깊이 각인돼 있다. '실미도'의 눈빛 살벌한 북파공작원,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력반 '꼴통' 형사의 이미지도 강하다. 수염 까칠한 얼굴로 담배를 질겅질겅 씹어대면서 "애인 있으면 지금 애인한테 전화해라. 다음 세상에서 만나자고"라며 피의자를 다그치던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는 거칠고, 야성적이고, 카리스마 넘친다. 물론 설경구가 강한 캐릭터만 연기한 건 아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00)나 '사랑을 놓치다'(06), '싸움'(07)에서는 멜로연기도 선보였다. 하지만 멜로나 코미디영화는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봤다. 강한 이미지만 남아 있는 이유다.
그러나 '활화산 같은 배우'는 이제 과거형이다. '해운대'가 전환점이 됐다. 설경구는 '해운대'에서 상가번영회장이자 횟집을 운영하는 최만식으로 출연, 이미지를 싹 바꿨다. 술 취해 야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다 쫓겨나고, 일회용 샴푸를 마시고 게거품을 물기도 한다. 망가진 모습이다. 짝사랑하는 연희(하지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교를 부리기까지 한다. 친숙하고 서민적인 캐릭터다.
설경구는 차기작 '용서는 없다'에 부검의로 출연한다. 다시 강한 캐릭터다. 그렇지만 더 이상 뜨겁기만 한 배우, 강한 캐릭터 영화만 흥행하는 배우가 아니다. '해운대'는 그에게 연기의 폭도 한 뼘 넓혀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영화가 됐다.
▶아르바이트로 영화 시작
고 유영길 촬영감독은 설경구에 대해 "비어있는 얼굴이다"고 표현했다. 배우에게는 대단한 찬사다. 어떤 캐릭터든, 무슨 역할이든, 그 빈 얼굴에 담을 수 있다. 설경구 연기력의 비밀 중 하나다. 선과 악, 기쁨과 슬픔, 분노와 희열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설경구는 소녀팬들이 열광할만한 빼어난 외모가 아니다. 대학교 때도 "밋밋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평범하다는 뜻이다. 그게 오히려 인생을 바꿨다. 출세작 '박하사탕'의 출연 계기가 됐다.
설경구의 원래 꿈은 연극 연출가였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출연한 교내 연극에서 빛을 발했고, 이후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학 4학년 때 극단 '한양 레퍼토리' 소속의 연극배우가 됐다. 연극 '심바새매'로 데뷔했다. 그러나 무명 신인배우의 길은 험난했다. 대부분의 신입 연극배우들이 그렇듯이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영화 '꽃잎'(96), '처녀들의 저녁식사'(98), '송어'(99) 등에 출연했지만 단역에 불과했다.
90년대만 해도 연극배우가 영화배우로 변신하는 일이 드물었다. 설경구에게도 '마음의 고향'은 연극무대였다. 설경구는 "영화는 단지 아르바이트일 뿐이었다"고 말하고는 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기 위해 시작한 영화 아르바이트가 한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는 첫걸음이 됐다.
▶연기를 위한 피나는 노력
설경구의 연기에 대한 집념과 노력은 유명하다. 그중에서 '고무줄 체중'을 빼놓을 수 없다. 2004년부터 매년 한차례씩 체중을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했다. '역도산'(04)에서 비운의 프로레슬러를 연기하기 위해 무려 28㎏의 체중을 늘렸고, 후속작인 '공공의 적2'(05)에서는 그만큼 뺐다. 조정 선수로 출연한 '사랑을 놓치다'(06)에서는 6㎏을 줄였고, '그놈 목소리'(07) 때는 10㎏을 또 뺐다. 그러다가 '강철중 : 공공의적1-1'(08)에서는 6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13㎏을 늘렸다. 최고와 최저 체중의 차이가 무려 41㎏이나 된다.
'다이어트의 신'으로 불릴 법도 하지만, 마른 편인 그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 지 짐작할 수 있다. 살을 찌우기 위해 매일 밤 라면과 초콜릿을 먹어 고지혈증세까지 보였고, 살을 뺄 때는 단식원에 들어갔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쓰러질 때까지 운동장을 달렸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어릴 적에는 사람들에게 내릴 곳을 물어보지 못해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기 일쑤였고, 여자가 앞에 있으면 얼굴이 빨개졌다고 한다. '숫기 없는' 그가 최고 배우가 된 비결을 엿볼 수 있다.
설경구는 "연기하지 말자"라는 연기관을 갖고 있다. 스스로 영화의 인물이 된다면, 따로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억지로 '웃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서, 예능프로에 출연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심성 고운 눈물의 제왕
폭발적인 에너지의 배우라는 이미지와 달리 설경구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다. 스스로 "눈물이 많은 편"이라고 털어놓는다. TV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울고, 영화 촬영하면서도 잘 운다는 것이다. '그놈 목소리' 때는 유괴범에게 돈가방 들고 뛰어가는 장면을 찍었는데, 촬영이 끝난 후에도 주체못할 정도로 울었다. '박하사탕' 때도 그랬다. 그만큼 캐릭터에 몰입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5월 결혼식에서도 '매우 많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해운대' 윤제균 감독과의 일화가 추가 공개됐다. 지난해 4월, 설경구는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윤제균 감독을 만났다. 소속사와 윤 감독이 출연 문제로 의견을 조율하던 무렵이었다. 설경구는 윤 감독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윤 감독은 IMF 때 휴직하면서 먹고 살려고 시나리오 쓰고, 감독이 없어서 직접 연출한 얘기 등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이날 두 사람은 부둥켜 안고 울음을 토해냈고, 설경구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사람 냄새 나는 재난영화'는 그렇게 감독과 배우의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탄생했다. 설경구는 "난 감독을 믿었다"는 한 마디로 모든 걸 설명한다.
설경구는 촬영장에서 막내 스태프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불러주는 '따뜻한' 배우이기도 하다. 송윤아의 아버지가 설경구의 첫 인상에 대해 "참 곱다"고 말했다거나, '해운대'에서 호흡을 맞춘 하지원이 "큰오빠같이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앞장 서서 해결해 줄 것 같다. 은근히 귀엽다"고 말한 것도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기는 송윤아도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의 식사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창부수다.
설경구는 불의 배우다. 불꽃처럼 뜨겁고, 불꽃처럼 타오른다. 설경구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박하사탕'(00)에서부터 그랬다. 심장이 터져나갈 듯, 온 생의 질곡을 떨쳐내려는듯 혼신의 힘을 다해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라스트 신이 깊이 각인돼 있다. '실미도'의 눈빛 살벌한 북파공작원,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력반 '꼴통' 형사의 이미지도 강하다. 수염 까칠한 얼굴로 담배를 질겅질겅 씹어대면서 "애인 있으면 지금 애인한테 전화해라. 다음 세상에서 만나자고"라며 피의자를 다그치던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는 거칠고, 야성적이고, 카리스마 넘친다. 물론 설경구가 강한 캐릭터만 연기한 건 아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00)나 '사랑을 놓치다'(06), '싸움'(07)에서는 멜로연기도 선보였다. 하지만 멜로나 코미디영화는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봤다. 강한 이미지만 남아 있는 이유다.
그러나 '활화산 같은 배우'는 이제 과거형이다. '해운대'가 전환점이 됐다. 설경구는 '해운대'에서 상가번영회장이자 횟집을 운영하는 최만식으로 출연, 이미지를 싹 바꿨다. 술 취해 야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다 쫓겨나고, 일회용 샴푸를 마시고 게거품을 물기도 한다. 망가진 모습이다. 짝사랑하는 연희(하지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교를 부리기까지 한다. 친숙하고 서민적인 캐릭터다.
설경구는 차기작 '용서는 없다'에 부검의로 출연한다. 다시 강한 캐릭터다. 그렇지만 더 이상 뜨겁기만 한 배우, 강한 캐릭터 영화만 흥행하는 배우가 아니다. '해운대'는 그에게 연기의 폭도 한 뼘 넓혀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영화가 됐다.
▶아르바이트로 영화 시작
고 유영길 촬영감독은 설경구에 대해 "비어있는 얼굴이다"고 표현했다. 배우에게는 대단한 찬사다. 어떤 캐릭터든, 무슨 역할이든, 그 빈 얼굴에 담을 수 있다. 설경구 연기력의 비밀 중 하나다. 선과 악, 기쁨과 슬픔, 분노와 희열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설경구는 소녀팬들이 열광할만한 빼어난 외모가 아니다. 대학교 때도 "밋밋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평범하다는 뜻이다. 그게 오히려 인생을 바꿨다. 출세작 '박하사탕'의 출연 계기가 됐다.
설경구의 원래 꿈은 연극 연출가였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출연한 교내 연극에서 빛을 발했고, 이후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학 4학년 때 극단 '한양 레퍼토리' 소속의 연극배우가 됐다. 연극 '심바새매'로 데뷔했다. 그러나 무명 신인배우의 길은 험난했다. 대부분의 신입 연극배우들이 그렇듯이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영화 '꽃잎'(96), '처녀들의 저녁식사'(98), '송어'(99) 등에 출연했지만 단역에 불과했다.
90년대만 해도 연극배우가 영화배우로 변신하는 일이 드물었다. 설경구에게도 '마음의 고향'은 연극무대였다. 설경구는 "영화는 단지 아르바이트일 뿐이었다"고 말하고는 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기 위해 시작한 영화 아르바이트가 한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는 첫걸음이 됐다.
▶연기를 위한 피나는 노력
설경구의 연기에 대한 집념과 노력은 유명하다. 그중에서 '고무줄 체중'을 빼놓을 수 없다. 2004년부터 매년 한차례씩 체중을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했다. '역도산'(04)에서 비운의 프로레슬러를 연기하기 위해 무려 28㎏의 체중을 늘렸고, 후속작인 '공공의 적2'(05)에서는 그만큼 뺐다. 조정 선수로 출연한 '사랑을 놓치다'(06)에서는 6㎏을 줄였고, '그놈 목소리'(07) 때는 10㎏을 또 뺐다. 그러다가 '강철중 : 공공의적1-1'(08)에서는 6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13㎏을 늘렸다. 최고와 최저 체중의 차이가 무려 41㎏이나 된다.
'다이어트의 신'으로 불릴 법도 하지만, 마른 편인 그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 지 짐작할 수 있다. 살을 찌우기 위해 매일 밤 라면과 초콜릿을 먹어 고지혈증세까지 보였고, 살을 뺄 때는 단식원에 들어갔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쓰러질 때까지 운동장을 달렸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어릴 적에는 사람들에게 내릴 곳을 물어보지 못해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기 일쑤였고, 여자가 앞에 있으면 얼굴이 빨개졌다고 한다. '숫기 없는' 그가 최고 배우가 된 비결을 엿볼 수 있다.
설경구는 "연기하지 말자"라는 연기관을 갖고 있다. 스스로 영화의 인물이 된다면, 따로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억지로 '웃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서, 예능프로에 출연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심성 고운 눈물의 제왕
폭발적인 에너지의 배우라는 이미지와 달리 설경구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다. 스스로 "눈물이 많은 편"이라고 털어놓는다. TV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울고, 영화 촬영하면서도 잘 운다는 것이다. '그놈 목소리' 때는 유괴범에게 돈가방 들고 뛰어가는 장면을 찍었는데, 촬영이 끝난 후에도 주체못할 정도로 울었다. '박하사탕' 때도 그랬다. 그만큼 캐릭터에 몰입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5월 결혼식에서도 '매우 많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해운대' 윤제균 감독과의 일화가 추가 공개됐다. 지난해 4월, 설경구는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윤제균 감독을 만났다. 소속사와 윤 감독이 출연 문제로 의견을 조율하던 무렵이었다. 설경구는 윤 감독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윤 감독은 IMF 때 휴직하면서 먹고 살려고 시나리오 쓰고, 감독이 없어서 직접 연출한 얘기 등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이날 두 사람은 부둥켜 안고 울음을 토해냈고, 설경구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사람 냄새 나는 재난영화'는 그렇게 감독과 배우의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탄생했다. 설경구는 "난 감독을 믿었다"는 한 마디로 모든 걸 설명한다.
설경구는 촬영장에서 막내 스태프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불러주는 '따뜻한' 배우이기도 하다. 송윤아의 아버지가 설경구의 첫 인상에 대해 "참 곱다"고 말했다거나, '해운대'에서 호흡을 맞춘 하지원이 "큰오빠같이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앞장 서서 해결해 줄 것 같다. 은근히 귀엽다"고 말한 것도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기는 송윤아도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의 식사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창부수다.
설경구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박하사탕'이다. 삶 전체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설경구는 '박하사탕'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충무로에서 무명이었다. '꽃잎'으로 데뷔했지만,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겨우 이름이 소개됐다. 그러다가 '박하사탕'의 김영호로 일약 스타가 됐다. '박하사탕'의 캐스팅 과정이 흥미롭다. 강원도 삼척에서 '송어'를 촬영하던 중 이창동 감독의 연락을 받고 만났다. 이 감독에게는 퇴짜를 맞았는데, 다음날 제작자의 연락을 받고 오디션을 봤다. 빗을 빌려서, 총으로 머리를 겨누는 장면을 연기했다. 다음날 캐스팅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감독이 오디션 영상을 보는데 부인이 "이 사람이 김영호다"라고 말하며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미술 스태프가 그린 김영호의 얼굴과 설경구가 닮았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설경구는 '박하사탕'에서 짝사랑 소녀에게 수줍게 박하사탕을 건네던 순수한 청년에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문 형사로 변하는 인물인 김영호를 연기했다. 이 역할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잡았다. < 임정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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