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임정식 기자의 시네마 오디세이
입력 : 2009.09.07 11:22
| 인도판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님 |
영화 '블랙'의 세계는 제목과 정반대다. 빛과 희망의 세계다. 영화는 희뿌연 빛으로 시작한다. 높다란 창문을 통해 비치는 흐린 빛. 그 속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이어 캄캄한 어둠이 단속적으로 이어지고,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소리는 침묵이고, 빛은 어둠일 뿐이라고.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미셸의 목소리다. 그녀는 완벽한 어둠에 갇힌 존재다. 그러나 미셸은 포기하지 않는다. 지하실에서 빛을 향해 촉수를 뻗는 음지식물의 안간힘으로 마침내 빛을 불러들인다. 영화는 눈부신 흰색으로 끝난다. 검은 어둠에서 출발해 빛의 세계로 문을 닫는다. '블랙'은 그 고단한 여정의 기록이다.
인도영화 '블랙'(?℉? 산제이 릴라 반살리)은 한 장애아와 교사의 힘겨운 삶을 따라간다. 2세 때부터 어둠에 갇혀 살야야 했던 미셸 맥날리(라니 무커르지)와 그녀를 정상인의 삶으로 이끌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데브라이 사하이(아미타브 밧찬)의 아름다운 관계를 그린다. 인도판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선생님 이야기다.
'블랙'은 영화 외적으로 많은 화제를 뿌렸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5년 '올해 최고의 영화 10편'으로 선정했다. 인도에서는 최대 영화제인 '페어 원 필름페어'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 11개 부문을 휩쓸었다. 인도의 '국민 배우' 아미타브 밧찬과 라니 무케르지가 호흡을 맞춘 것도 관심을 끌었다.
아미타브 밧찬은 눈 밝은 관객에게는 익숙하다. 아카데미시상식 8개 부문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개됐다. 주인공 자말이 어린 시절 밧찬의 사인을 받기 위해 일부러 똥통에 빠진 후 사인받으러 간 바로 그 배우다.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퀴즈프로의 첫번째 문제의 정답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도에서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블랙'의 줄거리는 사실 단순하다. 8세짜리 장애 소녀가 있다. 부잣집 딸이지만,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야생동물처럼 산다. 정신지체아 시설에 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녀에게 장애아 누이의 상처가 있는 교사가 마법사처럼 나타난다.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미셸은 온갖 고난을 뚫고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후반부에서는 사하이와 미셸의 역할이 뒤바뀐다. 뻔하기까지 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긴 여운을 남긴다. 사하이가 미셸을 교육하는 과정은 눈물겹다. 사하이가 뺨을 얻어맞으면서 입술로 알파벳을 가르치고, 미셸이 선인장 가시에 찔린 손을 호~ 불어주는 사하이의 손을 처음 잡고, 미셸이 졸업 가운을 입은 모습을 맨 처음 사하이에게 보여주겠다고 연설하는 장면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하이는 미셸의 눈, 귀, 입이 되어 그녀를 암흑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인도한다. 나중에는 미셸이 사하이의 안내자가 된다. 빛은 영원히 빛이 아니고, 어둠은 영원히 어둠이 아니다. 어둠이 오히려 빛을 감싸준다.
그러나 영화에는 불편한 점도 꽤 많다.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설정이 필요하다'는 의도에서 삽입한 장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알츠하이머 환자 사하이는 어떻게 때맞춰 눈물을 흘리고, 미셸의 동작을 기억해 춤을 추고, 비 오는 창밖으로 그녀를 이끌어 미셸이 처음 발음했던 '워~'라는 단어를 떠올릴까. 이 장면은 하나의 상징이거나 절박함 혹은 진정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의 연출 의도는 지나치게 표면화돼 있다.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나 정윤현 감독의 '말아톤'이 더 현실적이다.
배우들의 혼을 불사르는 연기는 아무리 칭찬해도 넘치지 않는다. 미셸의 아역을 맡은 아예사 카푸르는 생애 첫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빼어난 연기력을 펼쳐보인다. 밧찬은 뜨거움과 차가움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헌신적인 사랑과 삶의 비애를 극한적으로 보여주고, 무커르지는 거친 야성미과 여성적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블랙'은 인간승리의 감동적인 서사로 가득하다. 미셸은 졸업식 연설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않은 유일한 단어는 '불가능'이다"고 소개한다. 또 "꿈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눈이 안 보이는 나도 꿈이 있다"고 강조한다. 온갖 역경을 뚫고 소원을 이룬 미셸의 말이기에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다소의 작위성만 접어둔다면, 가슴 찡한 휴먼드라마로 감상하기에 손색없다.
< 기획취재팀>
인도영화 '블랙'(?℉? 산제이 릴라 반살리)은 한 장애아와 교사의 힘겨운 삶을 따라간다. 2세 때부터 어둠에 갇혀 살야야 했던 미셸 맥날리(라니 무커르지)와 그녀를 정상인의 삶으로 이끌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데브라이 사하이(아미타브 밧찬)의 아름다운 관계를 그린다. 인도판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선생님 이야기다.
'블랙'은 영화 외적으로 많은 화제를 뿌렸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5년 '올해 최고의 영화 10편'으로 선정했다. 인도에서는 최대 영화제인 '페어 원 필름페어'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 11개 부문을 휩쓸었다. 인도의 '국민 배우' 아미타브 밧찬과 라니 무케르지가 호흡을 맞춘 것도 관심을 끌었다.
아미타브 밧찬은 눈 밝은 관객에게는 익숙하다. 아카데미시상식 8개 부문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개됐다. 주인공 자말이 어린 시절 밧찬의 사인을 받기 위해 일부러 똥통에 빠진 후 사인받으러 간 바로 그 배우다.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퀴즈프로의 첫번째 문제의 정답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도에서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블랙'의 줄거리는 사실 단순하다. 8세짜리 장애 소녀가 있다. 부잣집 딸이지만,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야생동물처럼 산다. 정신지체아 시설에 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녀에게 장애아 누이의 상처가 있는 교사가 마법사처럼 나타난다.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미셸은 온갖 고난을 뚫고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후반부에서는 사하이와 미셸의 역할이 뒤바뀐다. 뻔하기까지 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긴 여운을 남긴다. 사하이가 미셸을 교육하는 과정은 눈물겹다. 사하이가 뺨을 얻어맞으면서 입술로 알파벳을 가르치고, 미셸이 선인장 가시에 찔린 손을 호~ 불어주는 사하이의 손을 처음 잡고, 미셸이 졸업 가운을 입은 모습을 맨 처음 사하이에게 보여주겠다고 연설하는 장면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하이는 미셸의 눈, 귀, 입이 되어 그녀를 암흑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인도한다. 나중에는 미셸이 사하이의 안내자가 된다. 빛은 영원히 빛이 아니고, 어둠은 영원히 어둠이 아니다. 어둠이 오히려 빛을 감싸준다.
그러나 영화에는 불편한 점도 꽤 많다.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설정이 필요하다'는 의도에서 삽입한 장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알츠하이머 환자 사하이는 어떻게 때맞춰 눈물을 흘리고, 미셸의 동작을 기억해 춤을 추고, 비 오는 창밖으로 그녀를 이끌어 미셸이 처음 발음했던 '워~'라는 단어를 떠올릴까. 이 장면은 하나의 상징이거나 절박함 혹은 진정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의 연출 의도는 지나치게 표면화돼 있다.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나 정윤현 감독의 '말아톤'이 더 현실적이다.
배우들의 혼을 불사르는 연기는 아무리 칭찬해도 넘치지 않는다. 미셸의 아역을 맡은 아예사 카푸르는 생애 첫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빼어난 연기력을 펼쳐보인다. 밧찬은 뜨거움과 차가움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헌신적인 사랑과 삶의 비애를 극한적으로 보여주고, 무커르지는 거친 야성미과 여성적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블랙'은 인간승리의 감동적인 서사로 가득하다. 미셸은 졸업식 연설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않은 유일한 단어는 '불가능'이다"고 소개한다. 또 "꿈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눈이 안 보이는 나도 꿈이 있다"고 강조한다. 온갖 역경을 뚫고 소원을 이룬 미셸의 말이기에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다소의 작위성만 접어둔다면, 가슴 찡한 휴먼드라마로 감상하기에 손색없다.
<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