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의 시네마 업데이트] 3D 애니메이션 '9(나인)'

3D 애니메이션 '9(나인)'은 한마디로 괴상한 애니메이션이다. '유령신부'의 감독 팀 버튼과 블록버스터 '원티드'의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브가 공동제작한 이 애니메이션은 생짜 신인 쉐인 액커가 연출을 맡았다. 공동제작자 둘도 세기의 괴짜들이지만 연출자인 쉐인 액커도 못지않게 '똘기' 어린 인물임이 틀림없다. 인류의 종말과 폐허로 변해버린 지구에서 봉제인형의 활극을 그린 애니메이션을 내놓다니. 그것도 2006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에 내놓았던 11분짜리 애니메이션을 극장용으로 뻥튀기했다니. 완전 강심장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어느 과학자가 봉제인형을 만든다. 봉제인형이 눈을 뜨니, 그를 만들었던 과학자는 죽어있고, 몸엔 '9'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9는 그렇게 태어나고, 밖이 온통 폐허라는 걸 깨닫는다. 9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2를 만나고, 과학문명의 폭주로 기계가 인간을 공격하고 인류가 종말을 맞았단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리더 1이 이끄는 생존자 무리들을 만난 9는 그들 무리에 합류해 기계 군단과 맞서 싸우기로 한다.

'나인'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인류의 종말 이후 이야기를 다룬다. 몸 속은 쓰다 만 부품으로 채워지고, 겉은 낡은 헝겊으로 덮인 주인공 봉제인형 캐릭터들은 사실상 폐허 더미 위에 인류가 남긴 유산을 상징한다. 오만한 리더 1, 4차원 발명가 2, 쌍둥이 학자 3과 4, 건장한 기계 기술자 5, 별난 예술가 6, 풍운의 여전사 7, 행동대장 8, 그리고 가장 신참이지만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는 9. 그들은 각각 인간이 쌓아왔던 경험과 지능, 직관, 학문, 기술, 예술, 용기, 힘 그리고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발휘돼 온 작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기계 군단으로 상징되는 거대 산업의 힘과 맞서는 손가락 만한 9개의 생명체, 즉 보잘 것 없는 인간 영혼의 조각들은 그렇게 폐허 속에서 아직 싸울 희망이 있고, 살아남을 이유가 있다며 사력을 다해 뛰어다니는 것이다.

묵직한 스토리를 감안해서인지 봉제인형 원정대와 기계군단의 싸움은 엄청난 액션의 쾌감을 선사한다. 실사보다 더 다이내믹한 카메라워크에 눈이 돌아갈 때, 먼지가 쌓인 책 더미, 다 부서진 레코드가 널린 풍경 등 무섭게 사실적인 화면들로 아련한 아픔을 담아낸다. 종말의 풍경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3D 세상 곳곳에 아날로그의 향수를 흘리는 '9'의 세계. 결코 편안하거나 이해하기 쉽진 않지만 어떤 틀을 돌파하려는 독창적인 사고 방식을 비주얼로 구현했다는 의미에서 분명 봐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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