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에 정답은 없다, 맘껏 상상하라

서양화가 이강소가 9월을 맞아 커다란 전시장을 펼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와 경기도 파주 헤이리 공간 퍼플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열고 있다. 갤러리현대에서는 1989년부터 20년간 작업한 회화를 비롯해 사진과 조각 등을 선보이며, 공간 퍼플에서는 최근작을 중심으로 설치 작품을 보여준다.

1980년대부터 동양적 서정성을 담은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강소는 1970년대에는 실험적인 설치나 퍼포먼스 작업을 활발하게 벌였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의 첫 전시는 전시장에 주막을 차려놓았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탁자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놀다 가게 했다. 파격적인 형식 때문에 "전시장이 아닌가 보다"며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서는 전시장 바닥에 밀가루를 뿌려놓고 그 위에 닭을 풀어놓았다. 닭이 뛰어다닌 흔적을 사진에 담아 전시했다.

이처럼 이강소는 끊임없이 변하고 실험하는 세계 미술의 격변을 바라보면서 뒤지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강소는 197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미술제로 꼽히는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그는 평면회화의 문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회화의 평면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 흰색·회색·청색을 주조로 한 부정형에 가까운 오리나 배의 형상이었다. 극도로 절제된 획과 색을 통해 동양사상이 묻어나왔다. 관람객에게는 내면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명상적인 작품이었지만 작가로선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였다.

이강소는 "대학(서울대 미대) 시절 아침에 술을 깨려고 근처 동물원을 자주 찾았다"며 "당시 본 동물들의 순수한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동물의 순수함과 맑은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 표현성이 강하지 않은 오리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내 그림에는 오리의 형상도 제대로 갖춰 있지 않고 오리 주변에 있는 선들이 구름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명확하게 보이는 것 이상을 상상하고 느낀다"고 말했다. "평면은 사이버 세계보다 더 대단한 세계"라는 것이다.

갤러리현대 전시에는 최근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진작품도 나온다. 작가는 "사진에서 새로운 놀이의 장을 발견했다. 욕심이 많다고 하겠지만 눈에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작 중에는 전보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도 포함됐다. 작가는 "아직 실험 중"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옛날에 벌인 퍼포먼스나 최근의 회화 작품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며 "관람객이 자기 방식대로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객에게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강소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우주가 다 있다"면서 "사람들과 내 것을 서로 약간씩 벗겨내고 드러내면서 소박한 작용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갤러리현대(02-2287-3500) 전시는 8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 공간 퍼플(031-956-8600) 전시는 4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