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는 통역사… 작가와 동등한 관계여야"

"큐레이터는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하다가 전기작가나 역사가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작가의 의도를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해주는 통역자 또는 편집자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부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 부큐레이터(associate curator)로 일하고 있는 정도련(36)씨의 말이다. 정씨는 모마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페인팅과 사진' 분야의 컬렉션과 전시를 맡게 됐다. 정씨는 9일 오후 4시 선재아트센터에서 현대미술연구소 SAMUSO 주최로 큐레이터에 대한 강의를 하기 위해 귀국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정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미국 버클리대(학사·석사)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현대미술로 주목받고 있는 미국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에서 일본 작가 구도 데쓰미에 대한 기획전을 열어 두각을 나타냈고 중국 작가 황용핑전(展) 등도 좋은 호응을 얻었다. 2001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코디네이터로 활약하기도 했다.

정씨는 "좋은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선 작가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며 "작가와 큐레이터는 서로 동등하면서도 존중하는 관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큐레이터의 기획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생산과 소비의 양태가 바뀌고 문화산업이 팽창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각한다"면서 "과거에도 굉장한 기획력과 영향력을 가진 큐레이터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모마는 187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모더니즘의 궤적을 대변할 중요 작품들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면서 "20세기 후반부터 현 시점까지의 현대미술도 모마는 훌륭한 컬렉션과 전시 역사가 있어 중요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뉴욕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수십년간 모마의 컬렉션을 보고 자라기 때문에 모마를 내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애착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사람들이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현대미술이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현대미술은 사회를 비판하는 힘이 있습니다. 논문이나 언론매체가 사회를 비판할 수 있지만 제한적이고 오래가지 못해요. 그러나 현대미술은 애매모호성을 통해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열려 있어요. 또 대중문화 위에 높은 수준의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문화도 다층적이어야 전체주의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