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하도 우니까 덩달아 눈물이…

영화계 입문 14년 만에 장편 데뷔하는 정기훈 감독의 '애자'(9일 개봉)는 많은 엄마와 딸들을 울릴 만하다. 가족관계를 분류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 가운데 '엄마와 딸'은 가장 흥미로운 시나리오를 배태(胚胎)하고 있다. 모녀지간은 아버지나 아들에겐 신비하기까지 한 관계다. 그들은 친구나 선·후배에 가깝고 간혹 자매 같을 뿐 아니라 종종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이다(그들은 정작 모녀 관계로 보일 때가 드물다). 단단한 연출 속에 재기가 번득이는 젊은 남자 감독이 이 불가사의한 관계를 영화로 만들었다.

애자(최강희)는 고교생 때 이미 비 오는 날엔 학교도 가지 않는 부산의 문학소녀다. 담임교사는 그의 재능을 아끼지만 엄마(김영애)는 다리가 불편한 아들만 신경 쓴다. 자연스레 엄마와 딸은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혼자 살며 소설을 쓰는 애자는 신문사 문예상 공모에서 쓴맛만 본다. 결혼을 앞둔 오빠 때문에 부산에 내려가지만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친다.

어느 날, 엄마가 쓰러져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애자는 만사를 제쳐놓고 엄마를 간호하지만 고집불통 두 모녀는 여전히 아옹다옹한다.

이 영화엔 대단한 반전이나 감동이 없다. 엄마와 오랜 세월 갈등해온 딸이 죽음을 앞둔 엄마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녀지간을 대단히 섬세하게 관찰(또는 취재)한 결과물이며, 그렇기에 (특히 여자 관객들에게) 대사 한 마디와 표정 하나가 알알이 실감 나는 영화다. 이 작품이 작년 부산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은 것은 스토리보다 그 대사의 디테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영화엔 사건이나 장치가 너무 없거나 밋밋하다. 엄마의 병은 암이고 불효녀는 운다. 특히 마지막 여행에서 모녀는 오랫동안 많이 운다. 하도 우니까 무심한 관객도 눈물이 난다. 반면, 나머지 캐릭터들은 낭비된다. 엄마를 좋아하는(?) 주치의나 딸의 남자친구는 완결된 작은 스토리를 가질 법한 데 끝까지 푸드덕거리기만 한다. 모녀 역할 배우들은 별것 아닌 걸로 싸우는 연기에서 스스로 어색한 듯 과장돼 있다.

부산 사투리를 쓰는 모녀가 줄곧 울고 싸우는 영화임을 감안할 것. 알아듣기 쉽지 않은 고(高)데시벨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