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의 완성까지… 그 빛나는 여정

구름 너머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1711년, 금강산 여행길에 오른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단발령(斷髮嶺) 고개에서 처음 금강산을 대하는 장면을 그린 〈단발령망금강산도〉다. 오른쪽 화면을 사선으로 짙게 채운 고개 중턱에는 가마에서 내려 금강산 장관을 바라보는 겸재 자신과 일행이 그려져 있다.

36세의 젊은 화가는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눈앞의 감동을 담았다. 이 그림을 포함해 여정을 따라 금강산 일대의 풍경을 표현한 13폭의 그림이 《신묘년 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에 전한다.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 중 가장 이른 나이에 그린 것으로, 아직 화법이 성숙되지 않은 초기 진경산수화풍을 보여준다.

8일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에서 개막한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 전은 겸재의 초기 화풍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겸재 서거 250주년을 맞아 30건 142점의 작품을 엄선해 선보인다.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북원수회도첩(北園壽會圖帖)》은 겸재가 진경산수화의 창안자일 뿐 아니라 풍속화 분야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는 특별한 자료다. 41세 때인 1716년 제작된 초창기 작품으로, 공조판서 이광적(1628~1717)의 과거급제 60주년을 맞아 북악산 및 인왕산 기슭에 살던 70세 이상 노인들과 그 자손들이 모여서 장수를 자축했던 것을 그렸다.

박물관은 "정선의 인물화 중 가장 시기가 빠른 것이고 기록화로서 드문 예"라며 "지금까지 풍속화의 시조는 관아재 조영석(1686~1761)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조선 풍속화의 원류를 달리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했다.

겸재는 산수, 인물, 화조 등 모든 분야에 능해 화성(畵聖)으로 불린다. 이원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천재는 아니고 대기만성(大器晩成)형 화가였다"고 했다. 서울 명문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나 84세까지 장수한 그는 평생 붓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의 30년 지기인 조영석이 "겸재가 전국을 두루 여행하고 사생하면서 사용한 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룬다"고 말했을 정도다.

전시장에는 36세부터 82세에 이르는 겸재의 작품 세계가 펼쳐져 있다. 60세에 이르러서야 화법이 완성돼 진경 기법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64세 때 그린 〈청풍계도〉는 한양 진경의 정신과 조형을 상징하는 명작이다. 인왕산 동쪽 기슭의 북쪽 골짜기를 그린 것으로, 화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힘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70대 이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비로봉도〉에서는 노(老)대가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부수적인 것을 과감히 생략하고 비로봉과 중향성(衆香城)만을 쓱쓱 그렸다. 개인소장가 손창근씨가 갖고 있다가 최초로 일반에 공개하는 작품이다.

당나라 시인 사공도(837~908)의 시론을 그림 22점으로 표현한 《사공도시품첩》에서는 세련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1925년 독일인 신부 베버에 의해 독일에 건너갔다가 2006년 반환된 《겸재 정선 화첩》은 10월 13일부터 전시된다. 간송미술관 소장 〈청풍계도〉와 〈금강내산총람도〉는 2주씩 번갈아 전시된다. 11월 22일까지. (02)2077-9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