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법정에 선 엄마와 딸

"나는 만들어졌다(I was engineered)"라는 내레이션으로 이 영화는 시작한다. 9일 개봉한 미국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백혈병에 걸린 언니를 치료할 제대혈 때문에 태어나게 된 동생의 이야기다. 이것이 법적으로 가능하고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느냐를 떠나, 참으로 기막힌 시나리오다. 딸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골수이식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새 아기를 낳으면서 완벽한 제대혈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새라(캐머런 디아즈)와 브라이언(제이슨 패트릭) 부부는 어느 날 딸 케이트(소피아 바실리바)가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부부는 어떤 치료법으로도 가망이 없음을 알고 낙담한다. 의사는 "비공식적 제안"이라며 인공수정으로 새 아이를 가지면 완벽한 치료용 제대혈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둘째 딸 애나(애비게일 브레슬린)는 제대혈은 물론, 줄기세포, 골수, 백혈구까지 언니 치료용으로 기증한다. 어느덧 11살이 된 애나는 "신장이식을 해야 한다"는 말에 "이제 내 몸을 지키겠다"며 부모를 고소한다.

이 영화는 11살짜리 딸과 부모의 법정 공방 드라마가 아니다. 사실 그렇게 진행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선한 일(내 몸 지키기)을 위해 악한 방법(부모 고소)을 쓰는 상황 자체가 너무 미국적이어서, 어느 쪽이 승소해도 관객으로선 불편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의 소송을 강조했던 연출은, 후반에 전혀 다르게 관객 마음을 움직이는 복선이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중반까지 장기적출이나 생체실험 따위가 연상되는 불편함이 없지 않다).

14살짜리 불치병 소녀가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 그 속에서 문득 찾아왔다 사라지는 사랑(처럼 보이는 환영), 삶에 대한 욕망과 무기력에 이은 분노, 그리고 체념과 눈물 끝에 비로소 찾아오는 평안은, 병상 옆에서 격동하다가 끝내 평평해지는 심박 그래프를 닮았다. 이런 영화를 보면 가장 큰 깨달음은 죽음 직전에 찾아오는 것 같다. 안타까운 건 그 깨달음을 실천할 삶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몹시 아픈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무척 가슴 아플 영화. 씩씩하게 불치병을 받아들이고 어른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를 보며 위안을 얻을 수도 있겠다. 캐머런 디아즈가 극 중 삭발하는데, 정작 삭발인 채 나오는 장면은 몇 쇼트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