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청룡의 여인' 되던 날 펑펑 울던 기억이...

200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 전날입니다. 매니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장진영씨의 시상 순서가 갑자기 변경됐어요. 신인상 말고 여우주연상을 해주세요". 진행을 맡았던 저의 서투른 일 처리 때문에 애꿎은 당신이 피해를 본거죠.

"큰 결례를 했는데. 시상을 거절하면 어떡하나..."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하는데, 그때 전화선을 타고 당신이 활짝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 나 상 안준다는 얘기네요". 그해 당신은 연기 잘하는 신인에 불과했습니다. '소름'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모두 다른 배우를 유력한 후보로 꼽았지요. 저 또한 다른 배우가 상을 받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당신을 '청룡의 여인'으로 지목한 것이지요. 그날 당신은 참 많이 울더군요. 시상식에 방해가 될 정도였습니다. 수상 소감도 길었습니다. 긴장 속에 생중계를 지휘하던 PD의 고함소리가 연신 터져나왔지요. 청룡상 역사상 가장 긴 수상 소감으로 기록될 정도였지요.

시상식 후 당신을 찾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기념 사진 촬영과 함께 케이크 커팅도 해야하는데 아무말없이 사라진거죠. 온 극장을 뒤진 끝에 당신을 분장실 한구석에서 찾았습니다. 트로피를 안은 채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더군요.

당신은 그렇게 화려하게 인생의 한 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높이높이 날았죠. '청룡의 여인'으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2003년 '싱글즈'로 또 다시 청룡을 품에 안으면서, 장진영이란 세 글자를 한국영화사에 깊이 새겼습니다.

'소름'때 당신의 연기, 참 소름끼쳤습니다. 윤종찬 감독은 당신이 참 독하다 했습니다. 주위를 밝게 물들이는 환한 미소, 장난꾸러기 같은 소탈한 성격. 그런데 카메라만 돌아가면 독한 모습으로 돌변했지요.

'국화꽃 향기'의 말기 위암 환자 연기도 충무로의 화제였습니다. '청연'을 빼놓을 수 없네요. 촬영기간 1년 내내 얼마나 심신이 고단했습니까. 여비행사 역을 맡아 험한 훈련도 참 많이 받았지요. 쉬운 길을 놔두고 괜한 고생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신은 2006년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한 영화제에서 또 한번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때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더군요. 당신의 수상소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슴을 움켜쥐면서 "너무 힘들어 연기를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눈물을 떨구었지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참 외로웠구나...'.

이제 가시는 그 길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겁니다. 당신을 애도하는 수많은 팬들의 모습이 보이는지요.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그 환한 미소만 담고 가십시오. 당신으로 인해 울고 웃었던 우리의 마음만을 담아 가십시오. 당신이 있어 너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