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듯 잊은 듯… 기억은 반투명

"작품을 들여다보면 반투명처럼 보일 겁니다. 사람의 기억을 머리와 가슴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정선전(展)》에는 아련한 기억의 잔상이 작가의 손끝에서 존재와 부존재의 경계를 넘나든다. 기억은 분명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지만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물질을 가진 어떤 존재보다 오랜 생명을 가진다. 작가는 이런 점에서 작품을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옛날부터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다"면서 "사진을 보면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작품 대부분이 사진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미소-젊은 시절 이해인 수녀님〉은 작가가 우연히 이해인 수녀의 젊었을 적 사진을 발견하고 완성한 작품이다. 작가는 "수녀님에게 '사진 이미지를 사용해도 될까요'라고 편지를 썼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고 밝혔다. 이해인 수녀의 배경에는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바다를 가져왔다. 작가는 "수녀님의 배경에는 왠지 바다가 어울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의 온화하면서도 청초한 미소가 고전(古典)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시킨다.

〈깃털 꽂은 소녀〉는 어린 소녀의 머리를 '뽐내고 싶었던 공작'처럼 갖가지 화려한 깃털로 치장해주고 있다. 한때 평범했던 소녀는 작가의 손끝에서 깃털 꽂은 아름다운 소녀로 태어났다.

〈나무와 미끄럼틀〉은 소녀시절의 작가와 작가의 어린 아들이 하나의 화폭에 동시에 등장한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작가는 〈어린 시절-숨겨진 불안〉을 통해 어린 시절이 행복한 것만은 아님을 암시한다. 순간을 포착했던 사진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전시는 24일까지 열린다. (02)730-7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