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나게 웃다가, 정말 눈물 나겠네

이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킬킬거렸고 여러 번 폭소를 터뜨렸다. 이윽고 객석에 불이 켜졌을 땐 공연히 쓸쓸해져서 매운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임순례 감독의 신작 '날아라 펭귄(24일 개봉)'은 2009년 현재 한국의 자화상 몇 가지를 묶은 영화다. 조기영어교육과 직장 내 차별, 기러기 아빠, 그리고 황혼이혼. 영화 제목의 '펭귄'은 이른바 '독수리·기러기·펭귄 아빠'의 그것이다. 이 새들은 한국의 유학광풍이 낳은 아빠들에 영문도 모르고 이름을 빌려줬다. 독수리는 언제든 아내와 아이가 있는 외국으로 갈 수 있는 돈 많은 아빠, 기러기는 1년 한 철만 갈 수 있는 아빠, 펭귄은 돈이 없어 공항에서 손만 흔드는 아빠.

이 영화는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다음 에피소드의 조연으로 등장하며 자연스레 주제가 바뀌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조기 영어교육에 목숨 건 엄마(문소리)가 갖가지 차별이 만연한 직장에 다니며, 그 사무실 과장(손병호)이 기러기 아빠이면서, 황혼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박인환·정혜선)의 아들이다.

소방관이 되고픈 아홉살 꼬마에게 "집에서도 영어로만 말하자"고 제안하는 엄마, 그런 아내를 보면서 남편은 '저건 아니다' 싶지만 딱히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아내의 논리 역시 "다들 그렇게 하니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방향도 모른 채 등을 떠밀려 좁은 길로 몰려가는 한국 조기 영어교육의 불행하고도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채식주의자이면서 술을 한 잔도 못하는 남자 신입사원과, 씩씩하고 활달하면서 층계참에서 혼자 담배 피우는 여자 신입사원은 여전히 우리 직장에서 편견의 대상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놓고 혼자 사는 과장은 하루가 멀다 않고 부하직원들과 저녁 약속을 잡는다. 방학을 맞아 들어 온 아이들은 엄마와 영어로 이야기하고, 아내는 "딸과 자는 게 익숙해서" 남편을 멀리한다.

은퇴한 뒤 하루종일 바둑 TV를 보거나 기보(棋譜) 놓기가 일인 남편은 집안일이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내를 부린다. 친구들의 경고도 무시하며 "여편네를 꽉 잡았다"고 확신하는 이 노인에게 어느 날 법원에서 출석통지서가 온다. 원고는 아내, 피고는 자신인 이혼소송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관객 400만 명을 사로잡은 임순례 감독의 사실적 묘사는 탄복지경이다. 공상을 묘사한 부분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모든 장면과 대사는 실생활의 그것과 완벽하게 같다. 특히 직장 내 풍경과 노부부의 일상을 그린 에피소드의 리얼리즘이란. 이 대목에서 터지는 관객들의 웃음은 단순한 공감에 그치지 않고 통쾌함과 죄책감 사이에서 크게 진자운동을 할 것이다.

영화는 우리가 옳다고 확신해 온 선택이 사실 아무런 근거나 합리성을 갖추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을 피곤하고 힘들게 만든다면, 그것은 관습으로도 이미 폐기해야 할 만큼 낡았다. 이 따뜻한 영화는 관객의 옆구리를 찌르지 않고 어깨를 감싼다. 관객은 야단맞은 기분이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모든 출연자가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빼어나게 아름답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위의 영화 선택은 세련됐고 한결 푸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