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보복(報復)침투

〈제5보〉(54~63)=고수(高手)들 바둑은 대개 끝없는 흥정의 연속이다. 단숨에 적진을 쑥밭 만들겠다고 단기(單騎)로 쳐들어가지도, 침입해온 적을 쥐 몰듯 공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기엔 그렇게 둬도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전제돼야 한다. 형세가 여의치 않을 경우 이 같은 신사협정(?)은 얼마든지 무너진다.

?Y의 침입이 어지간히 의외였던지, 이창호는 무려 27분의 장고 끝에 정면 대응 대신 54로 '보복 침투'를 감행한다. 참고1도 1의 직접 차단은 흑 2, 4로 리듬을 내줘 백진이 허물어진다고 본 것. 60까지 딴청 부린 듯해도 참고1도 흑 4의 맥점을 예방하고 있다.

바둑돌의 반탄력(反彈力)은 참으로 신비스러워서, 함께 엉켜 뒹굴다 보면 없던 눈(眼)이 잘도 생겨난다. 상대가 안 놀아주자(?) 흑은 61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61로 참고2도는 좀 싱거운 느낌. 61, 62로 함께 으르렁거리다 63에 붙인 순간 오전 대국이 끝났다. 점심때 생각할 순서가 주어진다는 건 행운인 동시에 고통이다. 이창호, 오늘 소화 잘 되긴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