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한국 규방의 조각보는 세계적인 생활 디자인"

몇 해 전부터 한글은 단순한 글자를 넘어서 디자인의 요소로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한글을 써넣은 옷은 물론이고, 한글 자모를 활용해 만든 가방, 소품까지 나왔다. 한때 브리트니 스피어스, 린제이 로한 같은 할리우스 톱스타들이 한글이 새겨진 옷을 입어 화제를 모았을 정도로 한글은 훌륭한 디자인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한글 세계화의 물꼬를 튼 대표주자가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다. 이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한글을 모티브로 한 패턴을 패션에는 물론이고 가전제품, 다이어리, 담배 포장, 아파트 출입문 등 다양한 방면에 적용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런 이씨가 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홍보대사를 맡아 우리 공예의 아름다움을 홍보한다. 지난 13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이씨의 부티크에서 그를 만났다. 이씨는 5층 꼭대기 옥상에 놓인 벤치에서 길 건너 선릉(宣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 보세요. 여기가 5층 꼭대기인데 저 건너 선릉보다 낮아요. 우리 조상들 참 대단해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문화에 대한 경외심이 첫인사를 대신했다.

사무실로 내려간 이씨가 명함을 건넸다. 작은 봉투 모양으로 생긴 명함을 열어보니 안쪽에 손으로 '행복하세요'라고 쓴 글씨가 보였다.

이씨의 사무실은 작은 박물관이다. 해외에서 수집한 갖가지 골동품도 가득했지만, 그보다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가져온 우리의 전통 제품들이 한아름이었다. 그 사이 조각보로 만든 그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사실 이 조각보가 바로 청주와 나를 이어준 인연이에요. 몇 해 전 소재를 구하려고 인사동을 걷다가 조각보 제품 하나를 발견했어요. 정말 예뻐서 한참을 보다가 주인한테 물었더니 청주비엔날레에 출품됐던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청주에 비엔날레가 있는지도 몰랐어요(웃음)." 이씨는 그 길로 청주비엔날레 홍보대사를 자원했다.

그에게 청주의 매력을 물었다. "서울토박이인 제가 평생 처음으로 청주에 갔어요. 입구서부터 기분이 정말 좋더군요. 마치 딴 세상으로 온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난개발로 인해 손을 못 대는 대도시들이 많아지는 요즘 보석 같은 도시입니다."

이씨는 자신과 청주의 인연을 맺어준 조각보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각보 비슷한 건 세계 어디나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조각보는 바느질 방식이나 색감이 다른 나라와는 달라요. 조각보를 이용한 작품을 지난해 파리 패션쇼에서 올렸을 때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제가 그랬어요. 서구에서 몬드리안이 했던 것을 우리는 수백년, 수천년 전부터 해왔다고요." 그는 "요즘엔 갤러리의 작품이 길거리로 뛰어나와 대중과 가까워지는 시대"라며 "한국의 규방에서 시작된 조각보를 세계인의 생활·디자인 문화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또 "청주의 자랑인 직지도 여러 방면에서 우리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순수한 한국 문화'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에선 대나무 제품을 일본의 젠(zen·禪) 스타일로 생각해요. 하지만 대나무는 한국에서도 많이 썼어요. 공통적인 문화지만 자신의 문화로 일본이 대나무를 '선점'한 것이지요. 학자들이 '이것이 한국 것이네, 저것이 중국 것이네' 탁상공론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문화를 포장해서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997년 파리에 진출한 이씨는 한동안 패션쇼가 끝나면 프랑스나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뒷풀이를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십명의 스태프를 데리고 한식당으로 직행한다. "한식당에 가면 우리의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우리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알리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패션쇼를 위해 파리행을 서둘렀다.